[강의] 제181강 : 해관서문답(解關西文答)

(관서문답록.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렇다면 『관서문답』은 어떤 글일까요? 더 정확히는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인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아들인 이전인(李全仁)이 아버지의 귀양지에서 병수발을 하며 묻고 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언적은 인종·명종 대의 중신으로, 찬성(贊成) 등을 지내며 사화 확대를 막는데 힘쓰다 강계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성리학에 대한 연구도 깊어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이후 퇴계가 그의 행장을 지으며 현인으로 일컬어 문묘에 종사되는 등 사림의 계보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만큼 회재는 학문적으로나 출세관(出世觀)에서 남명 선생과는 많이 달랐던 인물이었고, 서로 좋게만 보지는 않았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꼭 그래서 비판한 글을 썼다기보다, 관서문답록에 남명 선생에 대한 언급이 몇 군데 나오기에 이에 대한 해명을 겸해서 전체적인 서평을 남긴 것입니다. 이 글은 선생의 생전에는 공개되지 않다가, 제자인 정인홍 등이 문집을 엮으며 공개하여 영남좌우도 사림간의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때문에 적대적인 측에서는 남명 선생의 저작이 아니라 정인홍의 조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옛날은 요새와 같지 않아서 책이 나온다 하면 수천권 동일하게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건너 건너 전해지고 필사되고 하기 때문에 없던 문장을 가지고 싸우고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해관서문답의 내용 중에도 더러 잘못된 부분이나 오해가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을 이 강의에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남명 선생의 사상을 가늠하는 길로만 사용하시고 회재나 이전인에 대한 평가의 도구로는 사용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럼 글을 보겠습니다.


해관서문답(解關西文答)

全仁云者乃故貳相李彦迪之妓産也其名曰玉剛者也
전인(全仁)이라고 하는 자는 곧 이상(貳相)을 지낸 이언적(李彦迪)이 관기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으로, 본래 이름은 옥강(玉剛)이었다.
(전인의 출생과 조윤손의 아들로 지내게 된 경위, 생부에게 가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설명)

 - 이상은 정승 다음가는 벼슬이라는 듯으로, 회재가 지낸 찬성을 가리킵니다.

時復古竄在關西無他子弟孑孑孤寓
그때에 복고(復古)가 관서지방에 유배를 가 있었는데, 달리 자식이 없어 홀몸으로 외로이 귀양생활을 하고 있었다.
植聞而愍之委通信人於玉剛曰汝母非不說汝以所生之父汝非不知今則判書已歿復焉有所忌而不就貳相乎朝議喧騰已久今欲嚴鞠爾母汝旣負爾父又欲殺爾母乎
나는 그 소식을 듣고서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옥강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의 생모가 너의 생부에 대해 말하여 너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판서공이 돌아가셨으니, 뭐 거리낄 것이 있어 이상에게로 가지 않느냐? 조정에서 오래 전부터 너의 혈통 문제로 의론이 분분하여 이제 너의 생모를 엄히 신문하려 하는데, 너는 너의 생부를 저버리고 다시 생모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느냐?"라고 하였다.
(전인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어온 일, 이언적이 천거한 일 등 관계 설명,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식견이 모자라다고 비판)

 - 복고는 회재의 자(字)입니다. 조정에서 이전인의 혈통 문제가 거론된 것은 명종 9년 정월입니다. 관련 기사 :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901019_001

全仁生長武家焉有習聞之事乎
전인은 무가에서 성장하였으니 어찌 학문에 대해서 익히고 들은 바가 있겠는가?
始僦復古而方知向學
생부인 복고에게 찾아간 뒤에야 비로소 향학할 바를 알게 되었다.
其見其得固淺冊中所記多誤亦非復古所說者
그가 보고 들은 것이 본래 얕아 『관서문답록』 안에 기록한 내용 중에 틀린 것이 많으니, 또한 복고가 말한 바가 아닐 것이다.
(장영(張詠), 왕문정(王文正) 등의 고사를 바로잡음)

大學不言存養此必全仁之誤記
복고가 『대학』에는 존양(存養)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틀림없이 전인이 잘못 적은 것이라 하겠다.
大學明明德止至善乃開卷第一存養地也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고, 지선에 머무르는 데에 있다”는 것은 『대학』의 첫머리에서 존양하는 경지를 밝힌 것이다.
初學之士亦當理會況復古乎
이는 초학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이해하는 바인데 복고가 모를 리 있었겠는가?
(옹희(雍姬)의 고사, 재가에 대한 의논 비판)

 - 존양이란 본심을 잃지 않고 타고난 선성(善性)을 기르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사명 강의에서 경(敬)은 곧 마음을 보존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서로 상통하는 개념인데, 남명 선생께서 『대학』을 중요시한 것을 그 동안의 강의를 통해 여러 차례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바로 을묘사직소 둘째 강의에서 말했듯, 대학의 첫 문장에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히 선함에 머무는 것'이 바로 마음의 문제라고 선생께서는 생각하셔서 이렇게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其曰耳目口鼻之欲是私欲者亦非也
또한 “귀·눈·입·코의 욕망은 사욕(私欲)이다”라고 한 것도 잘못이다.
耳目口鼻之發雖聖人亦同同一天理也
귀·눈·입·코의 욕망이 생겨나는 것은 성인이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천리라 하겠다.
流於不善而後方可謂之欲也
그것이 착하지 못한 쪽으로 기울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但有人心道心之別者有形氣義理之間已
다만 인심과 도심의 구별이 있는 것은 형기(形氣)와 의리(義理)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故不曰人欲曰人心
그러므로 인욕(人欲)이라 하지 않고, 인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 공자님이나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픈 법이니 자연스런 욕망은 잘못이 아닌 것입니다. 다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미혹되지 않느냐가 중요하겠습니다.

冬有雷鳴之說恐未詳悉
겨울에 발생하는 천둥 소리에 대한 설명 또한 미진한 듯하다.
陽宜在地中而陰實陽虛陽在外不得入皆失其健順之和
겨울에는 양이 땅 속에 있어야 하는데 음이 실하고 양이 허하여, 양이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 있는 경우에는 모두 건순(健順)의 조화를 잃게 된다.
不得猶爲陰所制終不得爲陰所蓄有時發動
그래도 오히려 음에게 제압될 수도 없고 끝까지 음 속에 갇혀있을 수도 없어 때때로 우레가 발동하게 된다.
(조광조의 행적에 대한 해명, 회재가 벼슬길에 나아간 것을 뉘우치고 한탄한다고 적은 것에 대한 비판)

 - 건순의 조화는 음양의 조화와 같은 말입니다. 여기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아 관서문답록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十月十日戌時雷鳴於西南方大人曰冬月雷鳴可怪也 10월 10일 술시에 서남쪽에서 천둥이 울리자 대인께서 말씀하시길, “겨울에 천둥이 울리니 가히 괴이하다”하였다. 仁曰雷何以鳴乎 내가 “천둥은 어떻게 울리는 것입니까?”하자 말씀하시길, 曰陰包陽陽氣在內而不出奮擊而發也 “음이 양을 싸고 있어 양기가 안에 있으므로 나가지 못하니 분격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仁曰冬月則何如 曰陽在地中不宜發也 “겨울은 어찌 그렇습니까?” “양이 땅 속에 있으니 발생함이 마땅치 않다.” - 관서문답록 중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이상한 경우 지적 부탁드립니다.)

 - 천둥이란 번개가 치면서 급격히 온도가 올라 공기가 팽창하며 파열음을 내는 것으로, 번개의 원인을 봐야 하겠습니다. 번개는 위 좌측 그림과 같이 상승기류가 있는 곳에서 위 아래로 발달하는 뇌운 안에서 전하의 음양이 나뉘게 되면, 자연히 지면에는 양전하가 유도되는데 이에 따른 전압차가 커질 때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기가 적고 온도가 낮아 상승기류가 잘 없는 겨울엔 잘 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 우측 그림처럼 비스듬하게 뇌운이 형성되는 경우에는 드물게 치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 전기에 왕실과 사대부가에 널리 쓰인 회격묘(灰隔墓). 국조오례의에 나온다. 회(灰)는 곧 석회로, 그림에 회색으로 그려진 삼물(三物)은 석회와 고운 모래, 황토를 물에 갠 혼합물이다. 출처: 과학동아 2011년 6월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106N003)

植之用蜃灰初非辭石而取蜃
내가 어머니의 장례에 석회를 쓰지 않고 조개를 태운 재를 썼던 일은 처음부터 석회를 쓰지 않고 조개의 재를 쓰려 했던 것은 아니다.
適母在金海而捐席海蛤最便燔取因載大轝之船
때마침 어머니가 김해에서 돌아가셨는데 바닷가에서는 조개 껍질을 태워 그 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했기 때문에 상여배에 같이 실었던 것이다.
(중략)
若云詭異則非近情之說也
그러나 나의 이러한 행적을 두고서 궤이(詭異)하다고 한다면 이는 실정에 가까운 말이 아니다.
索隱行怪方是爲詭喪用蜃何詭之有乎
궁벽한 것을 캐고 괴이한 일을 행함이 궤이한 것이지, 장례에 조개의 재를 쓰는 것에 무슨 궤이한 것이 있겠는가?
今之近海之人例用蛤灰爲取其易辦於窮家也
오늘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으레 장례에 조개의 재를 사용하니, 이는 곧 궁벽한 살림에 조개의 재를 쉽게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且高山頂有螺蚌殼此是前天地混沌時殼也
또한 높은 산꼭대기에서도 고둥이나 조개 껍질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천지가 아직 혼돈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살았던 고둥이나 조개의 껍질인 것이다.
其曰消盡者非也
따라서 복고가 석회 이외에는 모두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獨見華元葬其君蜃灰石槨三年而葬君子譏之
옛날 화원(華元)이 그 임금의 장사에 조개와 재, 그리고 돌로 만든 관을 사용하여 3년 후에 매장하였는데, 군자가 이 일을 기롱하였다.
海傍蜃灰如沙土不日燔成與古不同
바닷가에서는 조개의 재가 내륙의 사토(沙土)와 같아 짧은 시간에 이를 태워서 재를 만들 수 있으니 고례(古禮)와 같지 않다.
(자신이 회재가 경상우병사와 배를 탄 것을 비판했다는 것에 대한 해명)

 - 석회는 오늘날 흔히 쓰는 시멘트의 주성분이기도 합니다. 가루로 만들어 물이나 기름에 개면 반죽처럼 성형이 쉬울 뿐더러 굳으면 시멘트처럼 딱딱해지니 장례에 활용한 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라 할만 합니다. 사실 위 글에 나온 것과 같은 논쟁이 무색한 것이, 조개의 껍질도 석회질로, 정확히 같은 성분입니다. 심지어는 내륙의 석회석도 해수 내 침전이나 조개껍질 등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남명 선생께서 본의아니게 본질을 정확히 짚은 셈입니다. 선생께서 위의 천둥 논의나 조개 화석 등을 언급하신 것으로 볼 때 당대의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개 화석)

그러나 여기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예(禮)의 본성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넉넉치 못한 사정에도 눈 앞에 굴러다니는 조개를 쓰지 않고 옛날 책의 구절을 따라 내륙의 석회를 구해 쓰는 것이 과연 禮이겠습니까? 禮라는 것이 '형식이 내용을 견인한다'는 원리에 따라 일정 부분 절대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시대가 변하고 장소가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형식이란 없는 것입니다. 이는 공자님을 비롯해 유가의 현인들이 다들 알고 계셨던 이치입니다. 결국 禮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공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다음의 학기유편 인용문(이번에도 정자(程子)의 말)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예의 근본은 백성들의 실정에서 나왔으니 성인은 그것을 인하여 인도해줄 뿐이다. 예의 틀은 백성들의 풍속에서 나왔으니 성인을 그것을 인하여 조절해줄 뿐이다."(5.3)
"예는 이치이며 문채이다. 이치는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며, 문채는 겉으로 드러나며 말단적인 것이다. 이치와 문채는 둘인 것 같지만 하나의 도리이다." - 下, 治道 5.4

이상입니다. 마지막 강의라 욕심이 과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한 달여 동안 함께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원문 출처: 남명학고문헌시스템 http://nmh.gsnu.ac.kr/jsp/search/simple_gun.jsp?find_sel=3&search_word=%ED%95%B4%EA%B4%80%EC%84%9C%EB%AC%B8%EB%8B%B5

개국626년 8월 27일

태백서당 훈장 한명회

김시습

626('17)-08-27 03:07

정제두

626('17)-08-27 11:46

성삼문

626('17)-08-27 20:37

한명회

626('17)-08-27 2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