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별강 : 민암부(民巖賦)

민암부(民巖賦)

六月之交 유월 어름 장마철에,
氵艶澦如馬 염예퇴(氵艶澦堆)가 말처럼 우뚝하여,
不可上也 올라갈 수도 없고,
不可下也 내려갈 수도 없다.
吁嘻哉 아아,
險莫過焉 험함이 이보다 더한 데는 없으리니,
舟以是行 배가 이로 인해 가기도 하고,
亦以是覆 또한 이 때문에 엎어지기도 한다.
民猶水也 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
古有說也 예로부터 있어 왔으니,
民則戴君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民則覆國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吾固知可見者水也 내 진실로 알거니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이니,
險在外者難狎 험함이 밖에 나타난 것은 만만하게 보기 어렵지만,
所不可見者心也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니,
險在內者易褻 험함이 안에 감추어진 것은 만만하게 보기 쉽다.
履莫易於平地 걸어다니기에 평지보다 더 평탄한 곳이 없지만,
跣不視而傷足 맨발로 다니면서 살피지 않다가는 발을 다치고,
處莫安於袵席 거처함이 이부자리보다 더 편안한 곳이 없지만,
尖不畏而觸目 바늘을 겁내지 않다가는 눈을 다친다.
禍實由於所忽 재앙은 실로 소홀히 하는 데서 생기나니,
巖不作於谿谷 험함이 계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怨毒在中 원한이 마음 속에 있을 적엔,
一念甚銳 한 사람의 생각이라 몹시 미세하고,
匹婦呼天 필부(匹婦)가 하늘에 호소해도,
一人甚細 한 사람일 적엔 매우 보잘 것 없다.
然昭格之無他 그러나 저 밝은 감응이란 다른 데 있지 않으니,
天視聽之在此 하늘의 보고 들으심이 바로 이 백성에게 있다네.
民所欲而必從 하늘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들어주니,
寔父母之於子 마치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와 같다.
始雖微於一念一婦 한 사람의 원한, 한 아낙의 하소연, 처음엔 하찮은 것이나,
終責報於皇皇上帝 끝내 거룩하신 상제(上帝)께 대신 갚아주기를 바라니,
其誰敢敵我上帝 그 누가 감히 우리 상제를 대적하리?
實天險之難濟 실로 하늘이 내린 험함은 건너기가 어렵도다.
亘萬古而設險 하늘이 만고(萬古)에 걸쳐 험함을 보였건만,
幾帝王之泄泄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이를 예사로 보았던고?
桀紂非亡於湯武 걸(桀)‧주(紂)가 탕(湯)‧무(武)에게 망한 것이 아니라,
乃不得於丘民 바로 백성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漢劉季爲小民 한(漢)의 유방(劉邦)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이었고,
秦二世爲大君 진(秦)의 호해(胡亥)는 대단한 임금이었는데,
以匹夫而易萬乘 필부(匹夫)로서 천자(天子)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是大權之何在 이처럼 큰 권한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只在乎吾民之手兮 다만 우리 백성의 손에 달려 있으니,
不可畏者甚可畏也 겁내지 않아도 될 만한 것, 몹시 겁낼 만하도다.
嘻噓哉 蜀山之險 아아, 촉산(蜀山)의 험함이
安得以僨君覆國也哉 어찌 임금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엎을 수 있으리오?
究厥巖之所自 그 암험함의 근원을 찾아보면,
亶不外乎一人 진실로 임금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由一人之不良 한 사람의 불량함에 말미암아,
危於是而甲仍 여기서 위험이 가장 크게 된다네.
宮室廣大 궁실(宮室)이 넓고 큼은,
巖之輿也 암험함의 시작이요,
女謁盛行 여알(女謁)이 성행함은,
巖之階也 암험의 계단이요,
稅斂無藝 세금을 기준 없이 거두어들임은,
巖之積也 암험함을 쌓음이요,
奢侈無度 도에 넘치는 사치는,
巖之立也 암험함을 일으켜 세움이요,
掊克在位 부극(掊克)이 자리를 차지함은,
巖之道也 암험으로 치닫는 길이요,
刑戮恣行 형벌(刑罰)을 자행(恣行)함은,
巖之固也 암험을 돌이킬 수 없게 함이다.
縱厥巖之在民 비록 그 암험함이 백성에게 있다지만,
何莫由於君德 어찌 임금의 덕에서 말미암지 않겠는가?
水莫險於河海 물은 하해(河海)보다 더 큰 것이 없지만,
非大風則妥帖 큰 바람이 아니면 고요하고,
險莫危於民心 암험함이 민심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없지만,
非暴君則同胞 포악한 임금이 아니면 다 같은 동포인 것을!
以同胞爲敵讐 동포를 원수로 생각하니,
庸誰使而然乎 누가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
南山節節 남산(南山)이 저렇듯 우뚝하지만,
維石巖巖 돌이 험하게 붙어 있고,
泰山巖巖 태산이 저렇듯 험준하지만,
魯邦所瞻 노(魯)나라 사람들이 우러러 본다.
其巖一也 그 암험함은 마찬가지로되,
安危則異 안위(安危)는 다르도다.
自我安之 나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
自我危爾 나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니,
莫曰民巖 백성을 암험하다 말하지 말라!
民不巖矣 백성은 암험하지 않느니라.

백성으로 인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 백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니, 어찌 지도자를 탓하지 않고 백성을 탓할 수가 있습니까? 백성이 그러한 것은 그저 거기 있는 조건인 것이니, 지도자는 있는 그대로의 백성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이끌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남명 선생은 산림에 은거하면서도 세상일을 잊지 못했고, 달 밝은 밤이면 혼자 슬피 노래하다가 눈물을 흘리곤 하여 주변사람들이 영문을 몰라했다고 합니다. 옛 성현의 글을 공부하면서도 주변에 가장 어려운 이들과 공감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그 험난했던 시절 얼마나 마음아파 하셨을지 감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상입니다.

개국626년 8월 3일
태백서당 훈장 한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