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제165강 : 위법성과 조각사유

자, 사족이 길었는데, 위법성조각사유의 첫 항목인 정당행위부터 설명해보겠습니다. 

정당행위란 법률상 허용된 행위,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일반적 상식이나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앞에서 예시로 든 집행관의 사형집행은 법령에 의한 행위로서 정당행위가 되므로 위법하지 않고, 전시 군인이 적군을 사살하는 행위 역시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위법하지 않습니다. 만약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이 위법하게 되어 살인죄에 해당한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싸울까요?

다음은 정당방위입니다. 얼마 전 '빨래건조대 살인미수 사건'으로 도마에 올랐던 정당방위는 자기나 타인의 법익에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한국 법원은 정당방위를 상당히 협소한 의미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조문을 3개로 분할해 해석하는 방법이죠. 자기나 타인에 대한/현재의/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해석하는데 저 세 가지 항목을 모두 충족해야지만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한 번의 공격행동으로서 현재의 침해행위가 종결되었다면 미래 다시 재공격해올 것을 대비해 추가 공격하는 행위를 위법하게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강도와 마주쳐 정당방위를 행사할 때, "혹시 지병은 없으시고, 무기를 갖고 계신가요? 혹은 저한테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릴 의사가 있으신지, 아니면 발작 같은 게 있으신지" 체크한 다음에 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멘트들도 나왔었습니다. 

다음은 상대방의 승낙에 의한 행위입니다. 폭행죄에 대해, 서로가 가위바위보 이후에 뺨맞기를 하기로 합의하고 뺨을 때렸다고 칩시다. 이런 경우에는 폭행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뺨을 지나치게 세게 때려서 이빨이 빠져버렸다면 그건 별도의 문제로 쳐야 하겠지만요. 단, 이런 경우에도 위법한 것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날 죽여 달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그 말을 믿고 그 사람을 죽였다면 이런 경우에는 위법성조각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촉탁승낙살인죄에 해당되어, 별도로 처벌됩니다(물론 일반살인죄에 비해 형은 감경됩니다).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위급함)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의미하며 이 경우에는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되어 벌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남의 가게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가면 주거침입 또는 영업방해죄에 해당하나, 만약 20톤 덤프트럭이 달려들고 있는 상태에서 그 행동이 아니라면 피할 방법이 없을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자구행위는 조문에 따르면 "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는데, 앞선 여러 조각사유들과는 달리 타인에 대한 것으로는 인정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청구권에 대해서만 인정됩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자력구제를 막기 위해 민형사 소송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런 소송제도(절차)에 청구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채무가 있는 자가 전재산을 하루아침에 처분하고 외국으로 도주한다든지, 분명히 재산이 있는 자가 채무회피를 위해 타인 명의로 재산을 이동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절차에 근거하여 청구권을 보장받기에는 시간적으로 급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해당자를 잡아 출국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등은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받지 않습니다. 후자 예시의 경우에는 법적절차로서 취소권행사가 있으므로 기회가 되면 추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마 역대급으로 길었던 강의인 것 같습니다.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인지라, 여러 유생들께서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것으로 태백서당 3월분 강의를 종료합니다. 오늘은 생각해 볼 문제를 따로 제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스스로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해 생각해보시고, 과연 이 규범들이 도입된 이유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지요. 

전자

626('17)-03-26 17:33

장지용

626('17)-03-26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