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서당(太白書堂)

ㆍ작성자	한명회
ㆍ작성일	개국626(2017)년 7월 21일 (금) 14:20 [미시(未時)]
ㆍ문서분류	강당

ㆍ추천: 0 ㆍ열람: 274

[강의] 제174강 : 왜 남명인가?

안녕하십니까? 훈장 한명회입니다.

한두차례가 아니지만 다시금 강당에 서니 떨림은 여전합니다. 강의에 앞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분량과 가독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글로만 전달되는 것이라 특히 그렇습니다. 너무 길고 빽빽하면 쉽게 읽을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가볍게 진행하면 관심이 깊은 분들께 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 첫강을 적당히 진행하겠으니 관련된 의견을 주시면 크게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왜 남명인가?

이 질문을 첫 강의 제목으로 삼아보았습니다. 사실 이 과목은 남명 선생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남명 선생의 문집에 관한 것이기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겠습니다만, 남명집을 함께 읽고자 하는 이유가 원전에서 느껴지는 높은 사상을 함께하고자 함이며, 또한 그 사상이 오늘날의 사회에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여겨서 한 차례 짚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현대 윤리의 최대 과제는 세대간 윤리의 구축

윤리는 행위에 대한 판단입니다. 과거에는 행위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면, 현대 과학의 발달로 전례없는 힘을 가지게 된 인류는 그 기술적 행위의 결과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또 얼마나 장기적으로 미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판단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 세대간 윤리(intergenerational ethics)입니다. 행위에 장기적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공동체 자체는 다음 세대, 또 그 다음세대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웃과도 안 되는 마당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는 참으로 난제입니다.

유학은 실천과 공감의 학문

우리 사회에서 유학이라고 하면 가부장제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연결되어서 일종의 적폐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공자를 버려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학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지, 실상 유학이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실천과 공감의 학문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논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입니다.

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汎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제자들은 안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경하며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을 사랑하고 仁을 가까이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행하고 남는 힘이 있거든 학문을 할 일이다.

이 외 더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의 강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유학이 비록 중국에서 넘어온 학문이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며 오랜 세월 백성들에게 체화되고, 많은 훌륭한 유학자들이 있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우리의 학문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럼 오늘날 인류의 과제를 위해 우리는 누구를 공부해야 할까요? 실천과 공감을 강조한 우리 민족의 사상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 남명 조식(南冥曺植, 1501 ~ 1572) 선생입니다.

敬義, 성현의 천만 가지 말을 요약하면 결국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선생께서는 퇴계 이황과 한 시대에 살았는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는데 힘썼습니다. 항상 칼을 차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한 방울을 차고 다녔으며, 경(敬)과 의(義)를 강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천을 강조하는 학풍 탓인지 직접 지은 책은 없고 공부하며 성현의 말을 모아 메모한 것을 제자들이 정리한 『학기유편(學記類編)』과 문집인 남명집만 전합니다. 제자로는 곽재우(왜란때 의병장), 정인홍(의병장), 김면(의병장), 이대기(의병장) 등이 있으니 그 가르침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주로 북인을 구성하여 혜종대왕 때 집권하였다가,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면서 학맥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남명집의 체제

남명집은 남명 선생의 글들을 정인홍 등이 모아 선조35년에 발간되었는데, 남명 선생께서 저술을 많이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남긴 글이 대부분 소실되어 여기저기서 다시 수집하고 제자들의 기억에 의존에 복원하고 한 탓에 분량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마저도 북인 몰락 이후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게 여러차례 개정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분류와 편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대학 남명학연구소에서 근래에 번역한 책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문 판본은 을유후판본이라고 합니다)

시(詩) 195편
부(賦) 3편
명(銘) 6편
서(書) 47편
기(記) 3편
발(跋) 5편
묘지(墓誌) 20편
소(疏) 4편
논(論) 1편
잡저(雜著) 4편

이 중 시를 10편 내외로 선정해서 두 강에 걸쳐 살펴보고자 하고요, 명 중에서 남명사상의 핵심이라 할 신명사명(神明舍銘)을 보겠습니다. 서 중에서는 퇴계에게 보낸 것 한 편을 살피고, 소 중에서 그 유명한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를 읽어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잡저 중 제가 남명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글인 해관서문답(解關西問答)을 보겠습니다. 여력이 남으면 마찬가지로 잡저 중 유두류록(遊頭流錄)을 강의할까 고민중에 있습니다. 순서는 바뀌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필요한 경우 학기유편의 인용문을 사용할 것입니다(강연할 정도로 이해가 깊지는 못해서...).

이상입니다. 첫 강의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국626년 7월 21일
태백서당 훈장 한명회

http://www.1392.org/bbs?laed61:346

서긍 626('17)-07-21 23:06	강의 잘 들었습니다. 조선은 유학의 한 갈래인 성리학 만을 숭상했고, 성리학이 수많은 폐단을 낳았기에 사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오게 한 장본인은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에 대한 남명 선생의 견해는 어떠하였는지 궁금합니다.

한명회

626('17)-07-22 01:26

[서긍님께]
말씀하신 내용에 십분 동의합니다. 유학을 맹목적으로 믿을 대상?으로 만든 이가 주자 아닐까 생각합니다(이념화? 과학화? 정확한 묘사가 쉽지 않습니다만). 남명 선생의 견해는 여러가지로 유추할 수 밖에 없지만, 문집에 주자가 등장하는 것은 '서' 부분에서만 단 세 차례로 '어진 이' 정도로만 표현하거나 '회암(주자의 호)이 평생 힘을 얻은 것이 <대학>에 있었다' 이런 내용 뿐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기유편을 보면 조금 다른데, 900여 구절 중 350여 구절이 주자의 인용으로 알려져 있어, 주자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 기록에 따르면 남명 선생은 공자, 주염계(주돈이), 정명도, 주자의 초상을 병풍으로 만들어 아침마다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유학 자체가 조선에 성리학의 형태로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학기유편의 나머지 구절들은 송,원,명에 이르는 60여 학자들로부터 나온 것으로써 오히려 다양한 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또한 앞으로 강의에서도 확인하시겠지만 <주자가례>를 그대로 따를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여주는 단서도 여럿 있어, 어느 누구의 이론이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천문, 지리, 풍수, 산학, 의학, 병법뿐만 아니라 노장과 불경도 섭렵했다고 하니 "주자학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근거없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학기의 주자 인용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자가 말하였다. "학문을 하는 목적은 실천에 있다. 다만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진실로 배우지 않은 것과 같다. (하략)"

하니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주자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충분한 답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명회	본 강의에 활용된 텍스트는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번역을 참고하였습니다.	06/25 18:40

고무열 626('17)-07-24 11:08	남명 선생님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이번 기회를 통해 열심히 배워보려 합니다. 좋은 강의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