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제199강 : 역사상의 제갈량

◎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에 대한 고찰

제갈량의 1차 북벌은 천수, 남안, 안정 3군을 점령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였습니다. 이때 제갈량은 북벌의 가장 핵심 요충지였던 가정의 수비를 마속에게 맡겨버립니다. 마속은 군령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위군에게 포위되어 식수가 끊겨버리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참패합니다. 북벌이 폭삭 망해버린 것은 둘째치고 안전하게 퇴각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다른 군사들을 내려보낸 다음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만 대동한 채 양평에 주둔하게 됩니다.

촉군을 추격하기 위해 내려온 사마의의 대군이 성을 지키고 있던 제갈량과 마주칩니다.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병사들로 하여금 청소를 하도록 하고 자신은 성루 위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거문고를 연주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자 반드시 복병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사마의는 대군을 물려 퇴각해버립니다.

그 뒤 제갈량은 가정을 잃은 마속을 참하여 대중에게 사죄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갈량이 가정을 잃고, 공성계를 쓰고, 마속을 참한 '실공참(失空斬)' 이야기입니다.


○ 공성계 기록을 인용하고 부정해 버린 배송지

제갈량이 공성계로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서진의 곽충이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에 등장합니다. 서진 시대부터 이미 제갈량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곽충 역시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갈량의 다섯 가지 일〉이라는 문장을 지었는데, 여기에 공성계 일화가 등장합니다.

배송지는 삼국지 제갈량전에 이 기록을 인용하고 주석을 달았지만, 이 내용은 믿기 어렵다고 바로 반박합니다.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에 사마의는 형주 도독으로서 완성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평에 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가정 전투에서 마속을 무찌른 장군도 사마의가 아니라 장합이었습니다.

제갈량의 공성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매복이 두려우면 일단 대군으로 성을 포위하고 지켜보는 방법도 있고, 성 위에 앉아 있는 제갈량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는 방법도 있으며, 소수의 정찰병을 보내 매복이 있는지 살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마의가 설사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 건너가는 부류의 사람이라 하여도, 성을 공략하고 제갈량을 생포할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도착하자마자 군대를 돌려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제갈량의 공성계 이야기는 진수의 삼국지에는 기록이 없고 배송지주에는 등장합니다. 다만 편찬자인 배송지가 거짓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제갈량의 공성계는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 민간에서는 '공명 선생께서 그러한 일도 하셨다더라'는 풍문이 돌았던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역사상의 제갈량

제갈량의 공성계, 박망파에 불을 지른 이야기, 풀배로 화살을 구한 이야기 등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박망파의 불은 유비가 놓았고, 적벽의 불은 주유와 황개의 합작품입니다. 동풍을 빌렸다는 이야기는 더욱 터무니없습니다.

문학 작품과 민간 전설 속에서 제갈량이 기막힌 계책을 내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사실 기막힌 계책을 잘 내는 인물은 곽가 같은 인물이었고, 오히려 제갈량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 기록과 사료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공통으로 제갈량을 "삼가고 조심하는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합니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유방의 세 인재 중에서 내정과 보급의 끝판왕인 소하가 제갈량과 비슷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책을 잘 내는 장량이나 전쟁을 잘하는 한신과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삼국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을 소하, 장량, 한신을 모두 합쳐놓은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군대를 통솔하는 능력이 장점이나 기묘한 책략에는 약점이 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용병하는 책략보다 훨씬 뛰어났다."

제갈량이 걸출한 정치가였으나 뛰어난 군사 전략가는 아니었다는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평가입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진수의 평가가 정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기록을 살펴 보면 제갈량은 삼고초려 이후 적벽대전 직전에 강동과 동맹을 성사시키는 데 활약을 한 뒤 유비가 영안탁고로 유선을 보좌할 것을 부탁할 때까지 제갈량의 존재감은 그리 부각되지 않습니다. 유비의 입촉은 방통의 권유로 시작되었고 제갈량은 형주를 지키다가 성도 포위군의 일익으로 참전하였습니다. 한중 공방전 당시에는 법정이 참모로 출진하였고 제갈량은 성도를 지켰습니다. 이릉전투에서도 제갈량은 참전하지 않고 성도를 지켰습니다.

여기서 제갈량이 병권을 얻은 것은 유비가 죽은 다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연의에서는 관우, 장비, 조운 등 유비 진영의 호장들이 제갈량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묘사되는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삼고초려 이후 영안탁고까지 제갈량의 활약은 천하삼분지계라는 대전략을 세운 일이며, 동오와의 동맹을 이끌었고, 그 다음부터는 유비의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한 것입니다.

제갈량에 대해서는 유비 집단의 흥망을 다루며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조의 여백사 일가 살인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이중톈, 삼국지 강의, 2007, 김영사.

박찬

627('18)-05-16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