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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7월 13일 (토) 09:02  [사시(巳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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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41강 : 목공(繆公)의 서융 정벌

◎ 목공(繆公) 서융의 패주가 되다.

양공(襄公)은 동주 왕실의 보증으로 서융의 드넓은 땅을 경영할 기회와 명분을 얻었으나 결실을 얻지 못하고 융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이후로도 7대를 내려오는 동안 진나라는 상으로 받은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150년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목공【기원전 659년~기원전 621년 재위】이라는 영망한 군주가 나타나 평왕이 하사했던 공수표를 현찰로 만들어 버립니다. 목공은 융왕을 굴복시키고 융족의 땅을 정복하여 무려 천 리에 이르는 땅을 넓힌 명군입니다.

목공은 39년 동안이나 재위에 있었는데 서융의 땅을 정복한 것은 재위 37년째인 기원전 623년이었습니다. 무려 37년이 걸렸죠. 그만큼 대단한 업적이었고 이 업적은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목공이 37년 동안 부지런히 진나라의 국력을 키웠기 때문에 서융을 정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결정적인 계략이 작용했습니다.


○ 미인계로 적을 무너뜨리다.

서융의 왕은 목공이 뛰어난 군주로 명망이 있자 이를 경계하기 위해 유여【由餘, 선조는 진(晉)나라 출신】라는 사람을 사신으로 보냅니다. 목공은 유여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과 진귀한 보물들을 구경시켜줍니다. 진나라의 부와 국력을 과시하려 한 것이죠.

그런데 유여는 구경을 마치고 딱 두 마디를 합니다.

“귀신을 부렸다면 귀신을 고생케 하였고, 백성을 부렸다면 백성을 고단케 하였습니다.”

목공의 의중을 간파한 유여는 촌철살인의 비판을 날린 것입니다. 목공은 유여를 비범하게 여겨 한 마디를 더 묻습니다.

“중원 민족은 예법과 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도 전란이 끊이지 않는데, 융족은 미개 부족으로 예법도 없고 형법도 없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시오?”

목공의 질문에 유여는 웃음을 터뜨리며 서융은 다른 두 가지로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하죠. 서융의 왕은 백성에게 덕을 베풀고, 백성은 왕에게 충성을 바쳐, 덕과 충으로 나라를 통치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원의 법도를 비판합니다. 처음에 법도를 만든 임금은 성인이어서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지키면서 존경을 받았지만 후세의 임금은 점점 사치와 방탕, 향락을 일삼으면서도 법도에 의존하여 위엄을 내세워 통치하니 백성들이 견딜 수 없다고요. 이것이 중원의 각국에 전란이 출현하는 원인이라고 합니다.

목공은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목공은 유여가 대단한 인재임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적국에 뛰어난 인재가 있는데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공은 한 신하를 불러 불안감을 털어놓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계책을 올립니다.

우선 유여를 억류시키자고 합니다. 유여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융왕이 의심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보내자고 합니다. 서융은 변방에 있어 춤과 노래에 능한 중원의 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니 이를 이용하여 서융에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를 선물로 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융왕이 미녀들에게 빠져 태만해지기를 기다리자고 합니다.

진나라에서 미녀 16명을 서융에 선물로 보내니 예상대로 정말 융왕은 술과 노래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습니다. 시기가 무르익자 목공은 유여를 돌려보냅니다. 서융으로 돌아간 유여는 향락에 빠진 융왕을 바로잡기 위해 간언을 하였지만, 이미 융왕은 주색에 빠져 유여를 거들떠 보지고 않고 간언도 듣지 않습니다. 유여는 실의에 빠지고, 이때 목공이 사자를 보내 간곡히 유여를 설득하니 유여는 마침내 목공의 수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목공은 유여를 극진히 대접하며 서융을 정벌할 계책을 묻죠. 서융에서 오래 살았던 유여는 서융을 칠 방법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줍니다. 목공 37년(기원전 623년)에 유여의 계책에 따라 서융을 쳐 12개나 되는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진나라의 영토로 합병합니다.

“37년, 진은 유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융왕을 토벌하고 12개의 나라를 합병하여 천 리에 이르는 땅을 넓히니 마침내 서융 지역의 패주가 되었다. 주 천자는 목공에게 소공(召公) 과(過)를 보내 축하하며 쇠북을 선물했다.”

- 사마천, 《사기》, 진본기(秦本紀)

목공의 서융 정복에 대하여 주 왕실에서 반응하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진나라가 주 왕실을 대신하며 복수를 완성한 것을 치하한 것이죠. 유왕이 융족에게 붙잡혀 살해당한 것을 복수한 것입니다.

목공은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며 서융 지역의 패주를 자처하게 되었습니다. 서융 정벌은 목공 재위 만년에 이루어졌는데, 지난 강의의 내용과 연장선에 있는 내용이라 이번 강의에서 먼저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목공은 지난 37년 동안 어떻게 나라를 발전시켰을까요? 그 과정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본기(秦本紀). [링크]


개국628년 7월 13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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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07-14 03:47
문서작성자 정제두님이 채택하신 글입니다
미인계는 아주 옛날에도 간첩 전략의 대표주자였나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등에서도 주의할 계책이라고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현대에도 러시아가 이런 전략을 많이 쓰죠.
정제두 미인계가 유용한 수단이지만, 그 전에 유여라는 통찰력 있는 인물을 떼어낸 다음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7/14 09:13
   
[2] 김지수
628('19)-07-29 13:35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략.. 실패를 안하니까 쭉 이어진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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