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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6월 29일 (토) 16:47  [신시(申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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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39강 : 서주(西周)의 멸망

◎ 서주의 쇠퇴와 멸망


○ 군사력을 탕진한 선왕(宣王)



공화 정치 14년째인 기원전 828년에 주 여왕(厲王)은 도망을 갔던 땅인 체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여왕이 사망하자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은 장성한 여왕의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였는데 그가 바로 선왕(宣王)입니다. 선왕은 기원전 828년부터 기원전 782년까지 무려 46년간 재위에 있었는데, 집권 초기에는 선왕때의 폐단을 바로잡고 소공 등 대신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나라를 잘 정돈했습니다. 이때는 통치를 잘해서 ‘선왕 중흥’으로 불릴 정도죠.

그런데 말년에 대사를 그르칩니다. 용병에 나섰다가 강융(姜戎)과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남방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또 많은 병력을 잃습니다. 서주는 각지의 땅을 많은 제후들에게 봉지로 주었기 때문에 천자가 다스리는 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주 왕실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군대가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제후들이 군사력으로는 범접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선왕이 병력을 소진하는 바람에 그 힘이 크게 약해집니다.


○ 장인의 반란으로 피살당한 유왕(幽王)



기원전 782년, 선왕이 사망하고 그 아들인 유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유왕은 부정축재에 눈이 멀었고 아첨만 잘하는 간신들만 총애하다가 기원전 771년에 변을 당합니다. 유왕의 장인이었던 신후(申侯)는 증후(繒侯), 견융(犬戎)과 연합해 서주의 도성인 호경(鎬京)을 기습했습니다. 유왕은 허겁지겁 도주하였으나 여산(驪山)에서 붙잡혀 피살당합니다.

기습을 당했을 때 유왕은 다급한 마음에 봉화를 피워 제후들의 근왕(勤王)을 기대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제후 대부분은 근왕을 오지 않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봉화희제후(烽火戲諸侯)'라는 고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봉화를 피워 제후를 희롱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유왕이 무척 총애한 후궁으로 포사(褒姒)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포사는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미인으로 유명합니다. 유왕은 포사를 무척 총애하여 멍청한 일을 벌이죠.

“포사는 잘 웃지 않았다. 유왕이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웃게 하려 했으나 웃지 않았다. 유왕은 봉수(烽燧)와 큰 북을 준비하여 적이 온다면서 봉화를 올리게 했다. 제후가 모두 달려왔지만 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포사가 크게 웃었다. 유왕은 그것이 좋아서 거듭 봉화를 올렸다. 그 후로는 믿지 않게 되었고 제후는 더 이상 달려오지 않았다.”

- 사마천, 《사기》, 주본기(周本紀)

심지어 유왕은 포사를 왕후로 삼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세웁니다. 왕후는 친정인 신나라로 쫓겨납니다. 자신의 딸이 비참하게 쫓겨나고 손자는 폐위 되었으니 유왕의 장인이었던 신후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윽고 신후는 증후, 견융과 연합하여 호경을 칩니다. 이때 급히 봉화를 피웠으나 소용이 없었죠. 유왕은 피살당하고 서주는 멸망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평왕(平王)이 뒤를 이어 동주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때 호경에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용감하게 싸워 적을 물리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주본기(周本紀). [링크]


개국628년 6월 29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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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06-30 16:10
문서작성자 정제두님이 채택하신 글입니다
포사의 태도를 보면 가짜뉴스를 그렇게 좋아하는 자들과 비슷해보이네요. 가짜뉴스에 속는 것을 보고 키득거리는 것이 현대의 모습이니까요.
정제두 사실 포사는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뜻밖의 상황에서 웃음이 나는 게 잘못은 아니지요. 유왕이 멍청한 탓이죠. 유왕의 봉화 장난질은 양치기 소년 우화랑 닮았습니다. 6/30 18:53
   
[2] 김일식
628('19)-07-02 19:46
이 글을 읽고서 조선시대 선조왕이 생각 나는 건 왜일까요??
정제두 아무래도 선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겠네요. 7/2 21:22
   
[3] 김지수
628('19)-07-29 13:27
양치기 소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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