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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11월 3일 (일) 19:45  [술시(戌時):초경(初更)]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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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61강 : 진나라의 멸망
○ 형제를 몰살하다

호해의 황위 등극은 명백한 찬탈이었습니다. 합법적인 계승이 아니었죠. 아직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하다고 느낀 호해는 조고와 상의한 끝에 형제들을 모조리 숙청하기로 합니다. 호해는 형제들에게 반역을 도모한다는 혐의를 씌웁니다.

그 결과 진시황의 아들 10명이 함양 거리에서 단체로 참수됐고 공주 12명이 두현에서 처형됩니다. 평소에 신중하여 전혀 트집을 잡을 수 없었던 공자 세 명도 붙잡아 예의를 어겼다며 자결을 명합니다. 호해의 폭정에 두려움을 느낀 공자 고라는 인물은 가족의 화를 피하기 위해 진시황과 함께 순장되겠다고 자청합니다. 호해를 제외한 진시황의 자녀들은 처형되거나 자결하거나 아니면 순장되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 이사의 처참한 최후

이사의 최후도 조고와 관련이 있습니다. 조고는 야심이 컸고 자신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이사를 출세의 걸림돌로 여겼습니다. 조고는 비열한 수단을 써서 이사를 함정에 빠뜨리죠.

이 무렵 호해는 주색과 여흥에 빠져 지내고 있었습니다.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황제를 위한 충언을 올려달라고 부탁하죠. 이세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7월에 진승과 오광은 대택향【大澤鄕.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쑤(宿)현】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여 조정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조고는 반란군이 들끊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향락에 빠져 아방궁에만 집착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하여 간언하고 싶지만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니 승상께서 나서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호해와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하죠. 이사는 승낙합니다.

아직까지도 이사는 조고의 실체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는 조고의 주선으로 호해를 세 차례 만납니다. 그런데 만나는 타이밍마다 호해는 미녀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죠. 그때마다 이사가 찾아와 간언을 하니 호해는 늙은이가 왜 한창 재미있을 때에만 찾아오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러자 조고가 나서서 결정타를 날립니다. 이사가 황제를 옹립한 공을 내세워 왕이 되려고 하고 있다고 하면서 또 진승과 결탁했을지도 모른다고 모함합니다. 이사의 아들 이유는 삼천군의 군수로 있었는데 대규모 반란군을 막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죠. 조고는 이를 적과 내통하였기 때문이라며 모함한 것입니다. 또 이사는 지위가 높고 권력이 너무 크니 그 힘을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호해는 이사의 내통 혐의에 대해 조사 명령을 내립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위기감을 느낀 이사는 상소를 올려 조고를 탄핵합니다. 상황이 위태로워지면 가장 먼저 폐하를 배신할 인물이 바로 조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호해는 조고를 믿고 이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사를 감옥에 가둬 버리죠. 그리고 심문을 조고에게 맡깁니다.

감옥에 갇힌 이사는 끝까지 자신의 죄가 없음을 주장하려 하였습니다. 옛날 진시황에게 긴축객서를 올려 상황을 반전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상소문을 써 호해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조고가 상소문을 가로채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가혹한 고문을 받죠. 고문을 이기지 못한 이사는 죄를 자백합니다.

이세황제 2년(기원전 208년)에 이사의 가족과 3족은 몰살당하고 이사는 아들과 함께 함양 저자거리에서 처형을 당하고 맙니다.

○ 호해의 최후

호해가 향락에 빠진 덕분에 조고는 쉽게 권력을 쥐었습니다. 호해 역시 조고에 의해 최후를 맞습니다. 호해는 그토록 조고를 신임했지만 조고는 호해를 늘 속여 왔을 뿐이었죠. 조고는 진시황의 자녀들, 몽염, 몽의 형제와 이사까지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반군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진나라 원래의 영토를 제외한 나머지 6국 지역은 모두 반란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조고는 이 사실을 호해가 알고 자신을 문책할까봐 두려웠죠.

조고는 사위인 함양령 염락(閻樂), 동생 조성(趙成)과 음모를 꾸며 황궁에 침입하여 호해를 협박에 자결하게 합니다. 이세황제 3년(기원전 207년)의 일이었습니다.

천하의 상황은 이미 어지러웠기 때문에 호해는 조고에게 죽지 않더라도 반란군에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유흥에만 빠져 조고에게 국사를 맡기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책임의 대가는 배신으로 인한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 조고의 최후

조고는 호해를 죽인 뒤 호해의 형의 아들인 자영(子嬰)을 옹립합니다. 이 무렵 이미 유방(劉邦)이 이끄는 군대가 함양의 코앞까지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조고는 유방과 비밀리에 내통하여 자신을 관중의 왕으로 삼고 관외는 유방에게 가지라고 하죠.

조고가 간악한 인물임을 잘 알고 있던 자영은 조고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 또한 조고에게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조고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죠.

염락이 돌아가 조고에게 보고했다. 조고는 여러 대신과 공자들을 모조리 불러 모아 2세를 죽인 상황을 말했다.

“진이 본래 왕국이었으나 시황이 천하에 군림했기에 ‘제’라 불렀던 것이오. 지금 6국이 다시 자립하고 진의 땅은 더욱 좁아졌으니 이제 빈 이름이나 마찬가지인 ‘제’라 부르는 것은 안 되겠소. 전처럼 왕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2세의 형의 아들인 공자 자영을 진왕으로 삼고, 검수의 예로 2세를 두현(杜縣) 남쪽의 의춘원(宜春苑)에 묻었다. 자영에게 목욕재계하고 조상의 사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는 한편 신하들을 접견하여 옥새를 받들도록 했다. 목욕재계 닷새째 자영은 두 아들과 이렇게 의논했다.

“승상 조고가 망이궁에서 2세를 죽이고는 신하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겁이 나서 대의를 거짓으로 빙자하여 나를 왕으로 세운 것이다. 내가 들자 하니 조고가 초와 약속하길 진의 종실을 없애고 관중의 왕이 되려고 한다. 지금 내게 종묘에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은 이를 기회로 사당 안에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다. 내가 병을 구실로 가지 않으면 승상이 틀림없이 스스로 찾아 올 테니 오는 즉시 죽여라.”

조고가 사람을 보내 자영을 여러 차례 청했으나 자영이 가지 않자 조고는 과연 자기가 가서는 “종묘의 일은 중대사인데 왕께서 어찌하여 가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자영이 마침내 조고를 재궁에서 찔러 죽이고 고조의 집안 삼족을 멸한 다음 함양 저자거리에 조리를 돌렸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자영은 조고를 유인한 뒤 일거에 제거해 버립니다. 조고는 사구의 정변을 일으켜 숱한 정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무렵에는 방심을 한 것 같습니다. 진나라 조정을 뒤흔든 간신의 최후는 너무나도 쉽게 끝나버렸습니다.


○ 멸망 : 초한지 앤딩

조고를 제거하였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었습니다. 자영은 함양에서 얼마 저항하지도 못하고 유방에게 항복합니다. 이로써 진나라는 멸망을 하죠. 유방은 자영을 잘 대접했지만 뒤에 군대를 이끌고 온 항우(項羽)는 자영과 그 일족을 모조리 처형합니다.

“자영이 진왕이 된 지 46일째, 초의 장수 패공【한고조 유방】이 진군을 격파하고 무관에 입관하여 마침내 패상(覇上)에 이르러 자영에게 사람을 보내 투항을 약속받았다. 자영은 즉시 (죄인처럼) 목에 끈을 매고 흰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나와 천자의 옥새와 부절을 받들고 지도(軹道) 부근에서 항복했다. 패공이 마침내 함양에 입성하여 궁실의 창고를 봉쇄하고 군대를 다시 패상으로 물렸다. 한 달 여가 지나자 제후들의 병력이 이르렀다. 항적(항우)은 종장(從長, 맹주)이 되어 자영과 진의 공자들 및 종족들을 죽이고 함양성을 도륙했다. 궁실을 불태우고 자녀를 포로로 잡았으며 진기한 보물과 재물들을 거두어 제후들과 나누었다. ”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진나라의 최후는 유명한 초한지 이야기로 앤딩을 맞습니다. 진시황은 눈부신 업적을 많이 남긴 전무후무한 황제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신의 권력에 연연한 것이 후사를 정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서 망국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진효공, 혜문왕, 소양왕으로 이어지는 황금 군주 라인에서 부국강병을 이끌었던 명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시황의 통일과 이후 진나가 급속히 멸망해 버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성공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거둔 이후의 일처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나라의 흥망성쇠 강의를 마칩니다. 조정에서 실록 편찬의 일을 맡았기에 그에 맞춰 조금은 서둘러 종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기회가 있으면 또 시리즈 강의로 찾아 뵙겟습니다.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11월 3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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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지수
628('19)-11-03 22:49
잘 들었습니다.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수고하셨습니다.
정제두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1/4 23:53
   
[2] 이윤탁
628('19)-11-04 14:07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정제두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1/4 23:53
   
[3] 장지용
628('19)-11-04 18:32
결국 조고도 숙청당했군요. 뭔가 갑작스레 권력을 쥐거나 빼앗기면 숙청의 칼날은 피할 수 없었나 봅니다.
정제두 그 점이 권력의 속성이죠.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1/5 00:04
   
[4] 김시습
628('19)-11-04 21:44
진의 최후는 너무도 허망합니다. 몇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나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강의 잘 보았습니다.
정제두 역사에는 허무한 장면이 많죠. 하지만 그게 밑거름이 되어 400년이나 지속된 한나라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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