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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10월 27일 (일) 18:58  [유시(酉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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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59강 : 만리장성
○ 만리장성

만리장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혹자는 중국 문명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하는 반면 혹자는 폭정의 상징이라고 평가합니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북방의 흉노족 때문입니다. 한나라 유방도 통일 이후에 흉노족과의 싸움에서 대패를 당해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죠. 북방민족은 항상 중국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사실 장성의 창시자는 진시황이 아닙니다. 전국시대에 흉노족과 인접해 있던 조나라와 연나라도 장성을 쌓았습니다. 진시황 대에 완공된 만리장성은 조나라와 연나라가 쌓은 장성을 상당 부분 활용해서 연결한 것입니다. 장성 서쪽은 진나라가 쌓은 것이고 중간은 조나라, 동쪽은 연나라의 것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의 축조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진나라 특유의 가혹한 법으로 장성 축조를 밀어붙였죠. 남아선호사상이 대단히 강했던 고대이지만 이때는 오히려 딸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성을 축조하다 죽을 아들을 낳느니 딸을 낳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사실 장성의 축조는 불필요한 공사는 아니었습니다. 장성을 세움으로써 북방의 흉노족의 침범을 억제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죠. 하지만 아방궁이나 대규모 황릉 같은 개인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토목 공사까지 같이 벌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나라는 통일 이후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흉노족과의 전쟁에 30만 대군을 동원했고 백월(百越)을 정복하고자 50만 대군을 동원했습니다. 북쪽으로는 흉노를 응징하고 남쪽 경계선을 바다까지 넓히고자 하였죠.

이렇듯 끊임없이 대업을 완수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 진시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장성의 축조 외에도 백성은 끊임없이 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야망이 누구보다 컸던 진시황은 만족을 몰랐습니다. 황제의 정치는 점점 폭정의 길로 가게 되었죠.


○ 불로장생을 꿈꾸다

진시황은 전국을 순행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아마도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달성했다는 자신의 성과에 대단히 심취한 듯하며 전국 순행을 돌며 웅장한 행렬을 통해 백성들에게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순행길 도중에 진시황은 제나라 태산에 가서 제례를 올리다가 서복(徐福)이라는 방사(方士)를 만납니다. 서복은 제나라의 신선사상을 소개시켜 주죠. 서복은 진시황에게 신선의 약을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수 있다고 달콤한 말을 전합니다. 서복의 말은 진시황을 매료시킵니다.

진시황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며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진시황도 죽음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서복의 말을 믿게 됩니다.

진시황 28년 (기원전 219년), 제나라 사람 서불(徐市)【문헌상 서복은 서불로 기록되기도 함】 등이 글을 올려 “바다에 봉래(蓬山), 방장(方丈), 영주(瀛洲)라는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 청컨대 목욕재계하시고, 어린 남녀 아이를 데리고 신선을 찾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서불을 보내 어린 남녀 아이 수천 명을 선발하여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게 했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결론부터 말하면 서복은 사기꾼이었습니다. 진시황을 여러 차례 속였죠. 서복은 신선의 약을 찾아오겠다는 말로써 재물과 선박, 사람을 받아갑니다. 서복은 진시황을 여러 차례 속인 후 끝내 행방불명이 되는데, 해상 도주를 감행해서 일본으로 도망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한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진시황은 불로장생에 집착하면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심했었나 봅니다. 정신적 불안을 겪으니 후대의 혹평을 들을 만한 실정도 저지릅니다. 다음 시간에는 진시황 폭정의 절정인 분서갱유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10월 27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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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10-27 19:42
이렇게 보면 현대에 진시황이 있었다면 업계 1위에 독점적 지위까지 확보했는데도, 시장 확장에 열을 올리고, 다른 후발주자의 도전을 막을 궁리를 하고, 문어발식 사업을 벌이는 기업인 같아 보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진시황 같은 기업인이 있다면 꽤 논란이 많았을겁니다. 아마도요.
정제두 진시황은 역사상 손꼽히는 대단히 근면한 황제였습니다. 기업인으로 비유하자면 그렇겠네요. 10/29 21:10
   
[2] 김시습
628('19)-10-29 12:34
만리장성 축조라는 대공사를 무리하고 가혹하게 시행한 이유의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후환의 대상이 될 세력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점 등을 말이죠. 강의 잘 보았습니다.
정제두 북방민족을 대비하는 데에는 분명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혹한 통치 때문에 민심은 악화되었지만요. 진시황이 남긴 시스템의 유산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고스란이 받아먹은 것 같습니다. 10/29 21:15
   
[3] 이윤탁
628('19)-11-01 20:26
강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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