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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10월 23일 (수) 22:23  [해시(亥時):이경(二更)]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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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58강 : 최초의 황제
○ 황제를 칭하다

본래 왕은 천자의 호칭이었지만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각 제후국 군주들이 왕을 칭하면서 왕은 더 이상 유아독존의 호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천하통일을 한 이후 진시황은 여전히 진왕이었습니다.

진시황은 천하 통일을 기념하여 새로운 호칭을 무엇으로 정할지에 대해서 대신들의 의견을 묻죠. 대신들이 말하기를, 중국에는 신화적 존재로 전해 내려오는 삼황오제가 있는데 그중 최고가 태황(泰皇)이니 태황으로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대신들의 의견을 들은 진시황은 태(泰)를 없애고 황(皇)만 남긴 뒤 오제의 제(帝)를 따서 황제(皇帝)라고 칭하기로 합니다. 전례에 있던 호칭보다는 최초의 호칭을 만든 것이죠. 또한 황과 제는 고대의 성스러운 존재였는데 자신의 호칭을 황제로 정하면서 진시황은 스스로를 신성화 한 것입니다.

호칭을 정한 후 진시황은 황제가 죽으면 시호를 올리는 일을 금지합니다. 신하들이 시호를 정하면서 선대의 왕을 평가하는 행위는 매우 불경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은 최초의 황제라 하여 시황제가 되고 그 다음 황제는 2세 황제, 3세 황제가 되도록 하여 만세까지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사실 만세는커녕 진나라는 3세 황제 때 망합니다. 하지만 이후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들은 자신만의 호칭을 따로 만들지 않고 모두 진시황을 따라 황제를 칭했습니다. 진시황 본인의 의도한 바가 달성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 군현제를 실시하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다

6국을 통합한 진나라는 제나나, 연나라, 초나라 처럼 진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신들의 보편적인 의견은 황자를 제후로 봉하여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때 이사(李斯)가 나서서 반대합니다.

승상 왕관 등이 “이제 막 제후들을 평정했지만 연, 제, 초나라의 땅은 너무 멀기 때문에 왕을 두지 않으면 그들을 제압할 수 없습니다. 황자들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허락하시길 청합니다”라 했다. 시황제가 군신들에게 이에 대해 의논하게 하자 군신들 모두가 그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정위 이사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주의 문왕과 무왕이 제후로 봉한 많은 친인척들이 성은 같았지만 갈수록 멀이지고 서로를 원수처럼 공격했고. 제후들끼리는 더더욱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주 천자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천하가 폐하의 신령으로 통일을 이루고 모두 군현이 되었습니다. 여러 아들과 공신들에게는 공적인 세금으로 큰 상을 내리시는 것으로도 그들을 통제하기에 충분합니다. 천하가 다른 뜻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술책입니다. 제후를 두는 것은 불편합니다.”

시황이 말했다.

“전쟁이 모두 끊임없는 전쟁에 고통을 받은 것은 제후들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묘의 신령이 보우하사 이제 막 천하가 평정되었는데 다시 나라를 세우는 것은 화근을 심는 것이다. 그러고도 안녕과 휴식을 바라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정위의 말이 옳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인 진시황은 각지에 군과 현을 설치하고 태수와 현령을 파견합니다. 이들은 황제가 임명한 관리였고 관작을 세습하는 제후가 아니었습니다. 주나라가 쇠약해진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였고 한편으로는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죠.

그리고 수백년 간 갈라져 있었던 각국이었기 때문에 진나라의 통일 이후에도 문자와 도량형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진시황은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정책을 추진합니다. 진시황은 확실히 지도자로서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통일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천하를 36개 군으로 나누고 군마다 수(守), 위(尉), 감(監)을 두었다. 민(民)을 검수(黔首)로 바꾸어 부르게 하고 전국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에 모은 다음 녹여서 무게 1천 석의 종거금인(鍾鐻金人)와 12개를 만들어 궁정에 배치했다. 법과 도량형, 수레바퀴의 폭을 통일하고 문자도 통일했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통일을 굳건히 다지기 시작한 진시황의 통치는 그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다음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10월 23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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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시습
628('19)-10-23 23:53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이야 말로 통치자로서의 자격과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황제를 시황제답게 만든 일대 혁명!!!
강의 잘 보았습니다.
정제두 진시황의 정책 중 긍정적인 것으로 뽑히는 것들이죠.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0/25 22:20
   
[2] 장지용
628('19)-10-24 20:16
진시황제가 꿈꾼 국가는 철저한 중앙집권국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진시황제의 생각은 이해됩니다. 그렇게 나라가 걸레조각처럼 갈려서 싸웠던 충격이 역사적 유산이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정제두 분봉제와 군현제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쟁론이 훗날 분서 사건으로 발전합니다. 10/25 22:21
   
[3] 이윤탁
628('19)-11-01 20:27
강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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