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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10월 18일 (금) 17:19  [유시(酉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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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57강 : 6국의 멸망 (2)
○ 위나라의 멸망

한, 조, 연이 진나라에 무너지자 위나라 역시 버틸 방도가 없었습니다.

진시황 22년(기원전 225년)에 진나라 장군 왕분(王賁)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왕분은 위나라 수도인 대량성 주변의 지세를 살펴보다가 변하(汴河)의 물을 끌어들여 대량에 수공을 감행하면 위나라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나라의 마지막 보루였던 수도 대량은 수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대량성은 3개월 동안이나 물에 잠기며 성벽마저 무너졌고 이때 진나라 군대가 들이닥치자 손쉽게 함락됩니다. 위왕 가(假)는 어쩔 수 없이 항복하고 위나라는 멸망합니다.

“진시황 22년(기원전 225년), 왕분이 위나라를 공격하면서 하구(河溝)의 물을 끌어다가 대량성으로 흘려보내 대량성을 허물었다. 그 왕이 항복을 청했고 그 땅을 모조리 취했다. ”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초나라의 멸망

한, 조, 위, 연 네 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시황은 남방의 초나라를 목표로 삼습니다. 초나라는 무려 800년의 역사가 있는 나라였고 한때 7국 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나라입니다. 진나라 군대와 마지막 결전을 벌일 때 초나라 군세는 만만치 않았으며 초나라 군을 이끈 장군 항연(項燕)은 훗날 서초패왕이 되는 항우의 할아버지입니다.

진시황 23년(기원전 224년)에 진시황은 왕전(王翦)을 총대장으로 임명하여 60만 대군을 인솔해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명합니다. 이때 왕전이 선택한 전략은 바로 장기전이었습니다.

왕전은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진시황이 의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60만 대군을 맡는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죠. 자칫하면 의심의 대상으로 낙인찍힐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출정 전부터 공을 세우면 이러저러한 상을 내려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출정을 나간 이후에도 계속 상소를 올려 간청합니다. 지나치게 상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 반란을 일으킬 인물이라는 의심을 벗어난 것이었죠.

이렇게 사전 작업을 마친 왕전은 초나라로 진격한 뒤 적극적으로 싸움을 하지 않고 오히려 진을 친 채 매일 잔치만 벌입니다. 진나라와 초나라 양측 군대는 이렇다 할 싸움 없이 1년을 대치합니다. 이 전쟁을 마지막 결전으로 여기고 결사항전의 각오를 했던 초나라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김이 빠지는 상황이었죠.

대치가 계속되자 초나라 대군은 병력을 동쪽으로 물립니다. 이때를 기회로 여긴 왕전은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초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승리를 거둔 진나라 대군은 초나라 도성인 수춘(壽春)을 함락시키고 초왕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초나라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죠.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은 회남(淮南)에서 창문군을 초왕으로 옹립한 다음 진나라에 계속 대항했습니다. 왕전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둡니다. 항연은 장렬하게 싸우다가 자결로 생을 마감하죠. 초나라 영토가 넓었고 왕전이 처음부터 장기전을 계획하고 전쟁을 하였기 때문에 진나라가 초나라를 완전히 제압하고 영토를 모두 수복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습니다.

“진시황 23년(기원전 224년), 진왕이 다시 왕전을 다시 불러 기어코 기용한 다음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진(陳)의 남쪽부터 평여(平輿)에 이르는 땅을 빼앗고 형왕(荊王, 초왕)을 사로잡았다. 진왕이 (초나라 도읍인) 영(郢)과 진(陳)에 행차했다. 초나라 장수 항연(項燕)이 창평군을 옹립하여 초나라 왕으로 삼고는 회하(淮河) 남쪽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

“진시황 24년(기원전 223년), 왕전, 몽무가 초나라를 공격해 초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창평군이 죽고, 항연은 자살했다. ”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제나라의 멸망

이제 남은 것은 제나라뿐이었습니다. 진나라 대군은 제나라 도성 임치를 향해 진격한 뒤 사신을 보내 제왕 전건을 회유합니다. 항복을 한다면 500리의 땅에 봉하겠다고 약속하죠. 전건은 그 말에 혹해서 싸우지 않고 항복을 해버립니다. 이렇게 제나라는 멸망하죠.

항복한 전건에게 진나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공(共)땅의 어느 송백(松柏) 숲속으로 보내 안치한 뒤 식량을 끊어 굶어죽게 합니다.

“진시황 26년(기원전 221년), 제나라 왕 전건(田建)과 그의 상국 후승(后勝)이 군사를 일으켜 서쪽 경계를 변경을 지키면서 진나라와의 왕래를 끊었다. 진왕은 장군 왕분에게 연나라 남쪽에서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제나라 왕 전건을 잡았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이로써 길고 길었던 춘추전국시대가 마무리되고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진시황에게는 통일된 나라의 통치라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통일 이후 진시황의 통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10월 18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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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10-18 23:22
중국은 이렇게 첫 통일을 이뤘지만, 이제 문제는 '중국인의 원형'을 창조할 차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제두 다음 강의도 기대 바랍니다. 10/22 19:44
   
[2] 김지수
628('19)-10-22 08:32
오랜만에 잘 보고 갑니다.
정제두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0/22 19:41
   
[3] 이윤탁
628('19)-11-01 20:27
강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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