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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10월 3일 (목) 11:02  [오시(午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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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55강 : 이사(李斯)의 등장
○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

이사는 초나라 출신으로 진나라에 가서 대단히 출세를 한 인물입니다. 본래 초나라에서는 미관말직에 그쳤던 인물이었죠.

이사가 젊었을 때에 겪었다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사가 변소에 갔는데 변소의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 나타나자 급하게 도망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곳간에 갔다가 쥐를 목격합니다. 곳간의 쥐는 변소의 쥐와 달랐습니다. ‘변소 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삐쩍 말랐고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을 갔는데, ‘곳간 쥐’는 먹을 것이 풍족하여 먹기도 잘 먹었도 사람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사는 그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죠. 사람에게도 주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사는 자신에게 초나라는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초나라를 떠나 더 큰물에서 놀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관직을 그만두고 초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간 이사는 그곳에서 대학자인 순자(荀子)의 제자가 됩니다.

순자는 이름난 유학자입니다. 공자의 학설이 정통적인 유학이라면 순자의 유학은 조금 달랐습니다. 순자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순자의 학설은 한마디로 ‘제왕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순자로부터 제왕학을 전수받은 이사는 좀 더 큰물을 찾습니다. 바로 진나라였죠. 이사는 당시 정세를 살펴본 후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국가는 진나라 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통일 대업을 이루는 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 이사 진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이사가 진나라에 갔을 때는 왕은 여불위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진시황이 아버지 장양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양왕은 금방 병을 얻어 죽죠. 진시황이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가 상국이 되어 국정을 주도합니다.

형세를 읽은 이사는 여불위 밑의 문객으로 들어갑니다. 이사는 포부가 크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사가 인재라고 여긴 여불위는 이사를 자신의 시종인 낭(郎)에 임명합니다. 그 후 이사는 진시황과 접촉할 기회를 얻게 되죠.

이때 이사는 작심하고 진시황에게 진언을 올립니다. 바야흐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좋은 시기가 왔다고 말입니다. 그 말은 들은 진시황은 이사가 마음에 들어 그를 장사(長史)로 임명합니다. 여불위 휘하에서 벗어나 중앙정부로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또 진시황을 만나게 된 이사는 두 번째 진언을 올립니다.

이사는 통일의 전략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하되 재물을 아낌없이 써서 뇌물, 회유, 이간책 등을 총동원하여 6국의 군신 관계를 흔들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진시황은 그 계책을 받아들여 통일 전쟁에서 활용하였고 실제로 큰 효과를 얻었습니다. 진시황은 다시 이사를 객경으로 임명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이사에게도 위기가 닥치는데 진시황이 갑자기 외국인 출신 관리들을 모두 국경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축객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당연히 초나라 출신인 이사도 진나라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되죠. 진시황은 왜 갑자기 축객령을 발표하게 된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진나라에 있었던 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 진나라를 뒤흔든 정국(鄭國) 사건

소양왕 때 범저가 내놓은 원교근공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한나라였습니다. 진시황이 통치할 당시에 한나라의 상태는 이미 나라가 망한 것과 다름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진나라를 어찌할 수도 없는 최약체 국가였던 한나라에서는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킬 수 있는 책략을 발휘합니다. 첩자를 보내 진나라로 하여금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이게 하여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할 여력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죠.

한나라가 고용한 첩자는 유명한 수리공이었던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나라의 첩자로서 진나라에 간 정국은 진시황을 만나서 300리가 넘는 운하를 건설하도록 설득합니다. 운하의 건설로 관중 일대 토지의 관개 문제를 해결하고 토질을 기름지게 하는 큰 효과가 있다고 말입니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 운하 건설을 명령합니다. 훗날 이 운하는 정국거(鄭國渠)라고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운하를 건설하는 도중에 정국이 한나라의 첩자였음이 들통납니다. 진시황은 격노하여 당장 정국을 붙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국은 의연한 태도로 진시황을 설득합니다. 지금의 토목공사가 당장은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킬 지도 모르나 완성만 된다면 진나라의 농업에 이로울 것이라고 말입니다. 진시황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공사를 계속하도록 명합니다.

정국은 첩자로서 보내졌지만 이름난 기술자답게 토목공사에는 진심으로 임했었나 봅니다. 《사기》의 <하거서(河渠書)>에서도 정국의 공사로 인하여 관중에 1000리의 농지가 기름진 땅이 되고 자연재해가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축객령을 선포와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

진나라는 진효공 이래로 외국 출신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큰 재미를 봤습니다. 인재이기만 하면 출신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본래 진나라 출신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아 가는 6국 출신 관리들을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정국 사건이 일어나자 진나라의 구 귀족들은 6국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을 형성하여 진시황으로 하여금 이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시황 또한 노애, 여불위 사건을 겪고 나서 정국 사건까지 터지자 화가 나있던 상황이라 축객령을 선포하게 되죠. 이때 막 객경이 임명되었던 이사(李斯)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이사는 이때 축객령의 부당한을 간하는 《간축객서》라는 글을 올리는데 중국사에서는 매우 유명한 상소문이라고 합니다.

간축객서에서 주장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객경들은 진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목공 때 백리해, 건숙, 유여는 모두 타국 출신이었고, 효공 때 상앙 역시 위나라 출신입니다. 혜문왕 때의 장의, 소양왕 때의 범저 역시 타국 사람입니다. 객경이 없었다면 진나라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죠.

둘째로 축객령은 인재를 가볍게 여기는 조치라고 말합니다. 진시황은 보물과 미녀를 좋아하였습니다. 보물은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임을 따지지 않고 모았으며 미녀 역시 어느 나라 출신임을 따지지 않고 총애하면서 왜 인재는 출신을 따지느냐고 말합니다.

셋째로 축객령은 6국을 돕는 꼴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나라든 인재는 부족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인재들이 진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합니다. 결국 6국으로 인재들을 내몰아 6국을 돕게 하는 꼴이니 축객령이 무슨 이득이 있냐고 말합니다.

진시황은 이사의 글을 읽고는 축객령을 철회합니다. 이때의 진시황은 설득이 통하는 군주였습니다. 뛰어난 신하의 설득을 들을 줄 아는 왕은 뛰어난 왕이라고 할 수 있죠.

“진시황 10년(기원전 237년), 진왕이 진나라에 와 있는 유세객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하여 쫓아내라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 이사가 글을 올려 설득하자 축객령을 취소했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내부 정치가 안정이 되자 진시황은 본격적인 통일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사뿐만 아니라 여러 유능한 신하들이 이 통일 전쟁에서 진시황을 보필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진나라의 통일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10월 3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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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10-03 15:18
축객령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은 대학 입시에서 출신 경로(출신 고교, 입학한 전형 등)가 어떤지에 따라 차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도 웃기게도 특별전형 쓴다니까 고3때 애들이 뭐라고 욕한 적도 있었고요. (장애인은 아니고 문화활동 경력자 자격으로 성공회대학교 입학 시도를 했었거든요. 실패했지만.)
정제두 출신을 따지지 않고 공평하게 판단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10/3 19:44
   
[2] 김영광
628('19)-10-03 16:16
이사에 대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정제두 청강에 감사드립니다. 10/3 19:44
   
[3] 김시습
628('19)-10-03 23:27
설득이 가능한 군주를 가진 나라는 부럽지만 설득에 능한 신하를 가진 나라는 부럽지 않네요. 진나라의 멸망이 오버랩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요. 강의 잘 보았습니다.
정제두 진시황과 이사 모두 천하통일의 주역이면서 망국의 주역이기도 하죠. 젊었을 때는 총명했으나 나이가 든 이후에 총기가 떨어진 케이스라고 하겠습니다. 10/4 19:38
   
[4] 이윤탁
628('19)-11-02 19:41
강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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