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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9월 29일 (일) 18:04  [유시(酉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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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54강 : 여불위의 최후
○ 노애 사건의 후폭풍

노애의 반란은 굉장히 신속하게 진압되었고 성년이 된 진시황은 이때부터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왕으로서 거듭납니다. 여불위에게 이 사건은 대단한 불행이었습니다. 노애는 여불위의 문객 출신이었고, 노애를 화관으로 위장하여 입궁시킨 사람도 바로 여불위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정황이 노애가 생포되어 자백하는 바람에 세상에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여불위의 실각까지는 좀더 시간이 결렸습니다. 노애의 반란은 진시황 9년 4월(기원전 238년)에 일어났고 여불위가 파직당한 때는 진시황 10년 10월(기원전 237년)입니다. 시기 상으로 1년 6개월의 차이가 있습니다. 진시황으로서도 빌미를 잡긴 했지만 공적과 명망이 있는 여불위를 곧바로 건드리기에는 고민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 여불위를 파직하다.

진시황 10년(기원전 237년)에 진시황은 여불위의 상국 직위를 박탈하고 식읍인 낙양으로 추방합니다. 그리고 2년 뒤인 진시황 12년(기원전 235년)에 여불위는 자결로 생을 마감합니다. 여불위가 자결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시황은 처음에 여불위의 직위만을 박탈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안감이 커졌죠. 낙양으로 돌아간 여불위에게 아직도 수많은 문객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6국의 사신들이 찾아와 여불위를 관리로 초빙하려 하였습니다.

진시황은 여불위가 노애처럼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은 여불위에게 서신을 보내어 식읍인 낙양에서 떠나 촉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진시황이 쓴 서신은 여불위를 꾸짖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공이 있어서 10만 호의 식읍을 받고 진나라와 무슨 관계가 있어서 중부(仲父)라고 불리느냐고 말입니다. 여불위는 그 편지를 받고는 주저 없이 독주를 마시고 자결을 택합니다.

“진시황 12년(기원전 235년), 문신후 여불위가 죽자 몰래 묻었다. 그의 가신으로 장례에 참가한 사람 중 진(晉)나라 출신은 추방했고, 진(秦)나라 출신으로 녹봉이 600석 이상인 자는 관직을 박탈하여 거주지를 옮기게 했으며, 녹봉이 500석 이하에 장례에 가지 않은 자들은 거주지만 옮기고 관직은 박탈하지 않았다.”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몰락의 이유

사실 여불위는 장양왕이 죽고 진시황이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이미 살길을 도모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권력을 넘겨주고 몸을 낮추었으면 진시황도 공을 감안하여 목숨을 보전할 길을 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불위는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태후와 사통을 한 것은 물론, 노애를 붙여줘 화근의 불씨가 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여불위가 한창 권세를 얻었을 때 문객이 무려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수많은 문객을 거느린 신하를 경계하지 않을 왕이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진시황은 정치적 수완이 매우 뛰어난 왕이었고 대단히 과감하면서도 잔인했습니다. 아버지를 왕으로 만들어준 은인이라 해서 봐줄 사람이 아니었죠.

여불위가 퇴장한 진나라는 다시 왕권 중심의 정치로 돌아갑니다. 효공, 혜문왕, 소양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시황은 새로운 인재의 보좌를 받아 업적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여불위가 사라진 진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재는 누구였을까요?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링크]


개국628년 9월 29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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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일식
628('19)-09-30 21:14
영원한 권력은 없는가 봅니다.
정제두 왕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3년 만에 죽은 것이 불행이었습니다. 10/1 23:32
   
[2] 장지용
628('19)-09-30 23:51
여불위는 결국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결말로 끝났네요.
정제두 여불위는 자신의 큰 그림은 잘 그려냈지만 진시황이 그린 큰 그림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10/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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