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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제두
작성일 개국628(2019)년 7월 6일 (토) 10:24  [사시(巳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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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40강 : 양공(襄公)의 건국

○ 진 양공(襄公), 제후가 되다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神)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진 양공【기원전 778년~기원전 766년 재위】은 이 말에 딱 맞는 지도자였습니다. 기원전 771년, 신후(申侯)와 증후(繒侯), 견융(犬戎) 연합군은 호경(鎬京)을 기습하여 함락시키고 여산(驪山)에서 유왕(幽王)을 잡아 살해합니다. 기습을 당했을 때 급히 봉화를 피웠지만 소용이 없었죠. 이미 제후들은 주 왕실에 등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서주 왕실과 유왕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달려와 열심히 싸웠습니다. 다른 제후들이 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빛이 났죠. 그가 바로 진 양공입니다. 비록 유왕은 구하지 못했지만 유왕의 아들인 평왕(平王)은 양공의 활약을 인상 깊게 지켜봤습니다.

 

기원전 770년, 평왕은 견융의 위협 견디지 못하고 도읍을 옮깁니다. 호경을 버리고 동쪽의 낙읍【洛邑. 지금의 허난성 뤄양(洛陽)】 으로 천도하기로 하죠. 동쪽으로 천도한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고 부른다는 것은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있습니다. 평왕이 천도할 당시에도 진 양공이 나서서 어가를 호위했습니다. 동주 시대의 시작점에서 진 양공은 매우 큰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양공은 목숨을 걸고 위급한 시기에 근왕에 나섰습니다. 서주가 동주로 이어져 희성(姬姓) 왕조가 혈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지대한 공을 세웠죠. 공을 치하하기 위해 평왕은 양공에게 두 가지의 상을 내립니다.

하나는 양공을 제후로 봉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진나라는 제후의 반열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땅을 내린 것입니다. 기산(岐山) 이서【현재의 산시(陝西)성 일대】의 대규모 땅을 하사합니다.

“양공 7년 봄(기원전 771년), 주 유왕이 포사로 인해 태자를 폐하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또 여러 차례 제후를 속이자 제후가 유왕을 배반했다. 서융의 견융이 신후와 함께 주를 정벌하여 유왕을 여산 밑에서 죽였다. 진 양공이 군대를 이끌고 주를 구원하러 나서 힘껏 싸워 공을 세웠다. 주가 견융의 난을 피해 동쪽 낙읍으로 천도할 때 양공은 군대를 이끌고 주 평왕을 호송했다. 평왕은 양공을 제후로 봉하고 기산(岐山)의 서쪽 땅을 하사하면서 “무도한 서융이 우리의 기(岐)와 풍(豐) 땅을 침탈한바 진나라가 융을 공격해 물리친다면 그 땅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맹서하고 봉지와 작위를 내렸다. 양공이 이때 처음으로 나라를 갖고 제후들과 사신을 교환하는 등 대등한 예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 사마천, 《사기》, 진본기(秦本紀)

제후에 오른 것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진나라는 이때부터 처음으로 제후의 반열에 올라 각국의 제후들과 대등한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 사회는 명분을 매우 따지는 사회였다고 합니다. 진나라가 제후라는 간판을 얻은 것은 분명 큰 명분이었습니다.

땅을 하사받은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인구와 영토는 국력의 중요한 지표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때 진나라에 내린 땅은 주나라가 소유한 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융족의 침략으로 빼앗긴 상태였죠. 위의 사료에서 주 왕실의 맹서를 요약하자면, "싸워서 이긴다면, 그 땅은 너희들 것이다."입니다. 따라서 진나라가 이 땅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통해 융족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진 양공은 생전에 그 대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뜻을 이루려 하였지만 양공은 융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죠. 제후라는 정치적 명분은 얻었지만 진나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융족이 차지한 기산 이서의 땅을 정복해내야 합니다. 진나라는 어떻게 이 땅을 차지하려 하였을까요?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왕리췬(2013). 진시황 강의. 김영사
위키문헌. 《사기(史記)》 - 진본기(秦本紀). [링크]


개국628년 7월 6일
영남학당 훈장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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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28('19)-07-07 00:27
문서작성자 정제두님이 채택하신 글입니다
한마디로 정복을 하되, 그 정복지의 지배권은 진나라에 부여한다라는 일종의 '적산 압수/불하'형 제후 책봉인 셈이네요. 훗날 한국 현대사에서도 적산을 불하받아 대기업이 된 케이스도 있습니다. 제 도시의 전통적인 공장이나 공장터는 과거 해방 후 적산 불하로 주인이 바뀐 공장들이었습니다.
정제두 평화적 방식의 불하와 전쟁을 통한 정복은 천지차이죠. 난이도 비교가 안됩니다. 다음 강의의 스포를 하자면 진나라는 평왕의 봉상으로부터 그 땅을 차지하기 까지 150년이 걸립니다. 7/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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