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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30(2021)년 10월 1일 (금) 17:51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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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76강 : 경기체가(景幾體歌)



* 명칭과 작품


경기체가는 고려후기 새로운 이념 세력으로 등장한 신흥 지식인들에 의해 형성되어 16세기까지 지속되었던 정형시를 이름하는 시가의 한 양식입니다. 엄정한 형식과 독특한 표현어법으로 여말선초 문화변동기의 역사적 전환을 주도했던 신흥 지식인 특유의 사유방식을 드러내고 있기에 그 특징이나 성격이 비교적 선명합니다.


실제로 짓고 노래하던 당대의 향수자들에게는 이것만을 따로 내세운다든가 독자적인 시의 양식으로 구별하여 인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생성력과 전파의 힘은 언어형식으로서의 시보다도 음악을 동반한 포괄적 형식의 노래로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장르의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문학의 한 양식으로 인식된 것이 근대에 접어들어서이며 이에 대한 명칭은 통일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명칭을 별곡(別曲), 별곡체(別曲體), 별곡체가(別曲體歌),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 경기하여체(景幾何如體), 경기체가(景幾體歌)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어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들 명칭 가운데 경기체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르적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명칭이라는 점과 오늘날 가장 널리 통용되는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경기체가 작품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 나온 <한림별곡>에서부터 16세기 권호문(權好文)<독락팔곡(獨樂八曲)>에 이르기까지 20편이 넘습니다.


* 형식과 전통성


경기체가의 특징이 가장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인으로 특유의 양식이 있습니다. 우리 정형시 가운데 그 틀이 가장 빡빡하게 짜여 있고 작품의 표현이 한문투성이이므로 보기에 따라서 한시도 우리말의 시가도 아닌 어정쩡한 인상을 풍깁니다. 이에 따라 기형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여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통례이나 이러한 평가가 정당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경기체가는 동일한 구조를 지닌 몇 개의 연이 중첩되어 한 작품을 이루는 연장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3장에서 12장에 걸치는 연장형식인데서 볼 수 있듯, 단연형식으로는 연의 구조 자체가 경기체가다운 맛이 나지 않도록 짜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으로의 완성감을 얻자면 최소한 3장 이상을 필요하게 됩니다.


경기체가의 경우, 한 연이 7행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다시 두 개의 구조적 단위로 양분되는 분절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7행의 한 연은 언제나 제4행과 제5행 사이에 분절되며, 각 절의 마지막 행(4행과 제7)에는 경기체가 특유의 ()~긔 엇더니잇고라는 고정된 투식어가 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뒷절(후소절)의 둘째행(6)은 반드시 첫 행(5)의 반복입니다.


보다 구체적 형식에 속하는 행 내에서의 음성적 질서, 곧 경기체가의 운율형식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세 가지의 율격모형이 결합된 형식을 취합니다. 1~3행은 43보격 형식(한 음보가 4모라로 이루어진 3보격 형식), 5~6행은 42보격 형식, 4행과 제7(~경 긔 엇더니잇고가 나오는 행)은 음절의 실현까지 규칙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2행의 첫째둘째 음보는 3모라만 음절로 실현되고 나머지 1모라는 율격적 장음이 오는 것입니다. 나머지 음보는 4모라 모두 음절로 실현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양식은 음절적 실현이 3 3 4음절형(1,2), 4 4 4음절형(3), 4 4음절형(5,6)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경기체가 특유의 음절 정형적 운율형식을 이루고 있습니다. 4행과 제7행의 율격은 원래 ‘~긔 엇더니잇고가 이루는 43보격이었던 것이 감탄사 가 고정된 형식으로 개입됨으로써 4보격으로 변형된, 특수한 모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하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1

●●●○

●●●○

●●●●

334

43보격

a

앞절

2

●●●○

●●●○

●●●●

b

3

●●●●

●●●●

●●●●

444

c

4

~ 경 긔 엇더니잇고

변형 4보격

d

5

●●●●

●●●●

44

42보격

e

뒷절

6

●●●●

●●●●

44

7

~ 경 긔 엇더니잇고

d


위 형식은 보기에 따라 그 형식적 연원이 우리말 시가의 전통과는 무관한 인상을 보이지만, 그 배후의 원리는 우리말 시가의 형식적 전통과 관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연장형식은 경기체가만이 아니라 고려속요에서도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형식입니다. 멀리는 신라의 <처용가>에서부터 가까이는 고려의 <도이장가(悼二將歌)>로 이어지는 42연시 계열과 균여의 <보현십원가>에서 발견되는 연작시 계열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4행을 기조로 하면서 거기에다 여음(또는 후렴)을 덧붙여 형식적 변용을 꾀하는 속요의 연 구성방식과 직접 통합니다.


그러나 이런 한문중심의 음절정형적 운율형식은, 우리말 시가의 율격 유형이 순수 음절률일 수밖에 없음을 비추어 중국적인 한시의 전통에서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3언이나 4언구라는 한시적인 구의 개념과 그 성격이 다릅니다. 율격적 기저는 한시가 아니라 우리말 시가쪽에 놓여 있으며, 경기체가가 특징적으로 보이는 음절수의 규칙성은 한시적인 작시의 관행을 우리말식 표현어법에 재편해 놓음으로써 얻어낸 경기체가 특유의 율동적 개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경기체가의 미학적 특성


경기체가의 미학적 특성은 바로 ()~긔 엇더니잇고에 담겨 있습니다. 우선 ‘~은 반복부에 제시된 개별적 사실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상으로 수렴해내는 주제표현의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체가의 추구하는 세계는 자아의 의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의 경험적 세계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경험적 세계라기보다 경험적 세계를 바라는 자아의 의지에 따라 선택적으로 구성한 일종의 지향적 세계입니다. 다만 이 지향적 세계를 경기체가는 주관적 세계 속에서가 아닌 객관적 세계 속에서 찾고 상상적 현실로가 아닌 경험적 현실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역사적 흐름


경기체가의 중심 향수층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기간에 우리 역사에 있어 중대한 문화적 전환을 주도한 신흥 사대부 계층입니다. 전통적으로 뿌리박고 있던 불교 중심 문화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새로운 가치체계의 유가 이념으로써 극복하고자 한 진보적 지식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모두 가치판단의 준거를 유가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설정하는 사대부 특유의 현실인식이 확립되어 있었고, 문화적 전환을 주도하고 정착시켜 나갔던 진보적 지식인 특유의 자신만만한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경기체가에 보이는 미학적 특성은 바로 이러한 의식과 긍지를 노래하고자 한 신진사대부들의 미의식이 보이는 특성인 것입니다. 더욱이 경기체가가 삶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세계와의 조화는 다름 아닌 유가에서 도달하려는 최고의 선이요, 궁극적인 삶의 이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과시의 어조와 밝고 건강한 정조 역시 시대를 선도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지녔던 긍지와 자신감의 직접적 표출인 것입니다.


15세기 세종 때를 전후한 중기에 들어오면 앞 시대보다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면서 작품의 세계가 관인으로서의 사대부적 이상보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이상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권근의 <상대별곡(霜臺別曲)>을 비롯해 변계량의 <화산별곡>, 그밖에 <가성덕><오륜가><연형제곡>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시대의 작품들이 주로 새 왕조의 건국에 따른 예악 정비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사대부적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할 공직자적 신분이 큰 중요성을 띠는 시대와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향수층의 범위가 사대부로서의 관인층뿐만 아니라 승려층에까지 확대되는 경향도 이 시대에 나타납니다. 의상화상의 <서방가>, 기화의 <미타찬> 2, 지은의 <기우목동가>는 모두 승려가 지은 불교적 세계와의 조화를 노래한 작품들입니다. 경기체가를 특정한 계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타진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닙니다.


그러나 중기의 작품들은 초기에 마련한 장르로서 포괄성과 포용력을 살리지 못하고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치중하는, 장르의 경색화를 초래하는데 그치고 맙니다. 지나치게 공인적 성격만 강조하거나(<상대별곡> 계열), 불찬가적 성격만 강조하는(<서방가> 계열) 주제의 경색화 현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작품의 서정성이 악화되고 상대적으로 이념 지향적인 교술성이 강화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됩니다.


후기에 해당하는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중기의 이러한 경색화 현상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다시 일기 시작합니다. 공인적 성격만을 강조된 궁중음악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시 개인 신분의 사대부적 이상을 노래하는 작품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어느 정도 서정성의 회복이 실현되기도 합니다. 그 첫 전환은 15세기 말 정극인의 <불우헌곡>, 박성건의 <금성별곡>에서 이루어져, 16세기에 이르러 김구의 <화전별곡>, 주세붕의 <태평곡> 3, 권호문의 <독락팔곡> 등 모두가 개인적인 발상에 의해 창작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으로 보면, 이 시대는 다시금 초기에로의 복귀를 지향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경기체가가 지닌 규범적 형식의 해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초기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이들에 따르면 경기체가는 이미 형식의 해체 문제가 아니라 장르의 해체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후기의 작품들이 이처럼 개인적인 성격을 회복하면서 형식의 해체를 동반하게 되고, 결국 장르의 해체현상을 빚기에 이르는 데는 그만한 시대적 요인이 있습니다. 경기체가는 이미 그 형식이 개인의 표현욕구를 통어할 만한 미학적 긴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궁중음악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악곡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경기체가는 형식을 통어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음악적 구속력마저 상실한 게 경기체가의 한계입니다.


참고자료


국문학편찬위원회, <국문학신강>, 새문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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