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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당 강의 공간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30(2021)년 9월 21일 (화) 15:09  [신시(申時)]
문서분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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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372강 : 향가의 내용
향가의 내용
향가는 다양한 내용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런 향가의 세계는 이별과 정한으로서 주류를 이루는 고려가요나 연군과 풍월(風月)로 흐르고 있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시가문학과 엄연히 구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신라인의 감성과 지혜가 차지하고 있는 바 공간의 폭이 매우 넓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 전래민요로서의 향가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그 첫 예가 <서동요>와 <풍요>인데, <서동요>는 현전 향가 중 가장 오래된 노래로 <삼국유사> 무왕조에 실려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사람 서동이 신라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서동요>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해 널리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로 선화공주를 차지하여 목적을 달성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오래 전부터 신라의 아동세계에서 널리 불리어진 동요임이 드러납니다. 가사 안에 ‘선화공주니믄’ 운운한 대목과 ‘맛둥바’ 운운한 대목만 서동이 새로 바꿔서 삽입 변형 시켰을 뿐. 나머지 노래 가사는 예전부터 전해오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민요는 오랜 세월을 두고 전파ㆍ유전되기 마련인데 기록에는 서동이 지은 노래가 삽시간에 서울에 퍼져 궁중에까지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풍요>는 <삼국유사> 양지사석조에 실려 있습니다. 선덕여왕 때 양지가 영묘사의 장육존상을 소조(塑造)할 때 성 안의 사녀(士女)가 진흙을 운반하면서 불렀다는 이 노래는 기록 그대로를 신빙한다더라도 양지의 창작이 아님은 물론, 사녀들이 지어 부른 노래도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노동요를 대용되기도 하였다가 일연 당시에는 방아타령으로 다시 전용된 노래입니다.
개인의 사상과 감정, 생활의 애환을 담은 서정시적 가요가 신라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부족ㆍ집단적 사회체제의 붕괴와 개인과 가족에 대한 의식으로 전환된 4~5세기 무렵부터입니다. 하지만 서정시적 향가가 가장 밀집된 시기는 삼국통일기를 전후로 한 7~8세기경입니다,

서정시로서의 향가로 대표적인 작품으로 <제망매가>를 꼽습니다. <제망매가>는 <삼국유사>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 있고, 작자는 경덕왕 때의 낭도이자 승려인 월명사입니다. 월명사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하여 재를 지낼 때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갑자기 심한 바람이 일어나 지전을 날려 서쪽으로 가게 했다는 내용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슬픔과 공포감, 그리고 인간 운명에 대한 허무와 무상감, 생과 사에 대한 느낌 등을 제시하여 높은 수준의 시적 경지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동기간의 관계를 나뭇가지로, 인간의 죽음을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으로 비유한 수사법이 돋보입니다.
이 작품이 결사에 이르러 불교적 색채가 나타나고 있어서 불교가요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종교성을 감안하더라도 순수 서정적인 성격이 나타나기 때문에 서정가요로 일컫기도 합니다.
<모죽지랑가>는 효소왕 대의 낭도인 득오가 지은 작품으로, <삼국유사> 효소왕대 죽지랑조에 실려 있습니다. 득오가 일개 아간 직에 불과한 문관 익선에게 징발되어 부산성 창직으로 있으며 고역을 치를 때 지은 노래인데, 죽지랑의 사후 노래로 비쳐지기도 하나 죽지랑을 잠깐만이라도 보고싶어 하는 소망과 그의 높은 인격을 사모하는 심경을 간절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낭이 있을 당시인 통일신라시대 이후 권좌에서 실각되어 ‘잔주름살’만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는 모습을 득오가 안타깝게 여기면서 노래한 작품입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역시 기파랑이라는 화랑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역시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실려 있습니다. 작자는 충담사로, 월명사와 같은 신분이며 경덕왕 때 사람입니다.

열치매
나토얀 드리
힌 구름 조초 가는 안디하
새파 나리 여
기랑(耆郞) 즈 이슈라.
일로 나리ㅅ
낭(郞) 디니다샤온
좇누아져
아으 ㅅ가지 노파
서리 누올 화판(花判)여.

해석)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감이 아니냐.
새파란 내에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부터 냇가 조약에서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자.
아아, 잣 가지 놓아
서리 못누울 화판이여.

이 노래에서 건져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이미지는 기파랑의 지고한 인격과 찬 서리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드높은 정신입니다. 통삼 이전 한창 당년의 용맹스러운 화랑도의 면모가 많이 변색되어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헌화가(獻花歌)>는 견우노옹(선승, 혹은 신선이나 촌로)을 작자로 삼은 바가 있는 작자 미상의 작품입니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에 실려 있습니다. 임해천장이나 되는 높은 절벽에 활짝 피어 있는 철쭉꽃을 따다가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부른 노래로, 노인의 순박하면서도 나이를 초월한 여성미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일을 수 있고 노인과 수로부인과의 정신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정가요의 관점에서 떠나 늙은 농부의 후박한 인심을 그린 노래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가>는 효성왕 즉위 초 신충이 군왕의 위약을 원망하는 노래로, <삼국유사> 신충괘관조에 실려 있습니다.

효성왕이 잠저에 있을 때 현사 신충과 궁정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던 중 “후일 경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음에도 왕으로 등극하여 다른 공신들을 등용하고 신충 자신이 등용되지 않자, 이를 노래 지어 잣나무에 붙였더니 그 잣나무가 시들고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뒤늦게나마 신충에게 벼슬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래 내용은 덧없는 세상사와 억울하고 쓰라린 심사를 의연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원가>에 주술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외연상의 문제로서 한 개인의 서러운 심경을 읊은 서정시에 해당됩니다.

불교는 신라인의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따라서 불교적인 종교생활을 노래한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고, <삼국유사>의 일연 역시 승려였기에 <삼국유사>를 통해 불교 계통의 작품이 전해지고 작품 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세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망념을 쫓아내고 심성을 닦기 위해서, 내세를 지향하기 위해서 신라 사람들은 불교적인 색채의 시를 읊었습니다.
불가(佛歌)로서의 향가로, <원왕생가>, <도천수대비가>, <우적가>, <풍요> 등 4편과 <균여전>의 <보현십원가>가 완전한 불교시가로 있고, 불교적인 정감이 투영된 작품으로 <제망매가>를 들 수 있습니다.

<원왕생가>는 문무왕대 광덕이 지은 노래로 <삼국유사> 광덕염장조에 전해집니다.

하 이뎨
서방(西方)장 가샤리고
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
곰가다 고샤셔
다딤 기프샨 존(尊)어 울워리
두 손 모도 호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그릴 사 잇다 고 샤셔
아으 이 몸 기텨 두고
사십팔 대원(四十八大願) 일고 살까.

해석)
달아, 이제
서방까지 가려는 가요?
무량수전에
뉘우침 오램을 함씬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존전을 우러러
두 손을 모두어.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을 남겨두고
사십팔 대원 이루실까.

위 노래는 법장보살의 사십팔 대원에 입각한 서방정토에의 왕생을 기원한 작품으로서 아미타 신앙을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종래의 기복불교에서 벗어나 원생극락의 신앙으로 전환한 신라불교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적가>는 원성왕대 노승인 영재가 지은 노래로 <삼국유사> 영재우적조에 실려 있습니다. 심가나 선가의 예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길 닦음에도 공로가 큰 노래, 죽음보다도 더 큰 정토 희구의 뜻을 읊은 관음력 표상의 가요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영재가 90세를 넘어서 속세를 떠나 지리산으로 가는데 예순 명이 넘는 도적을 만나 그들의 청에 따라 부른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는 영재에게는 자경자각의 심적 묘사를, 수도인에게는 망적을 잡아서 굴복시켜야만 진ㆍ각의 불성을 얻게 됨을 보인 노래입니다.

<도천수관음가>는 경덕왕 때 한기리에 사는 희명(希明)이 눈이 먼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분황사에 있는 관음화상 앞에 가서 아들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노래를 지어 그 아들로 하여금 따라서 부르게 한 작품입니다.

이 노래 속에선 관음보살의 영험함을 믿고자 했던 신라인의 의식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불교적 의식의 발견과 함께 여인의 지극한 모성애도 찾을 수 있어서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풍요>도 무상 관념과 공덕 관념이 내재해 있는 불교노래입니다. 중생들이 현세 구복의 차원에서 벗어나 영생할 수 있는 세계에 귀의하고자 공덕을 닦아야 한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보현십원가>는 현전 향가의 거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입니다. 여기에 예경제불가(敬諸佛歌)ㆍ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ㆍ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ㆍ참회억장가ㆍ수희공덕가(隨喜功德歌)ㆍ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ㆍ청불주세가(請佛住世歌)ㆍ상수불학가(常隨佛學歌)ㆍ항순중생가(恒順衆生歌)ㆍ보개회향가(普皆廻向歌)ㆍ총결무진가(總結無盡歌) 등 11수로 되어 있습니다. 작자인 균여가 보현보살의 십대원에 바탕을 두고 읊은 작품으로서 보살 정신에 입각하여 중생들을 깨우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된 찬불가 또는 전도가입니다.

부드루
그리 뷰텨 전(前)에
누온 모
법계(法界)록 니로 가라
진진(塵塵)마락 부텨ㅅ찰(刹)이
찰찰(刹刹)마다 뫼시리
법계(法界)샨 부텨
구세(九世) 다아 예(禮)져
아으 신어의업기피염(身語意業疲厭)
이에 브즐 다라.

해석)
마음의 붓으로
그리운 부처 앞에
절하는 몸이여
법계 없어지도록 일러다오.
티끌마다 부첫절이며,
절마다 모셔놓은
법계 자신 부처께
구세 내내 절하옵고자.
아아, 몸ㆍ말ㆍ뜻의 업(業)에 싫지 않게
이리 되어 있노라.

위 가사는 <예경제불가>로서 마음의 붓으로 구세가 다할 때까지 부처님께 예경하겠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전편이 불타에 대한 찬송과 기원, 참회, 공양, 선행, 중생제도, 청불, 불학(佛學)에 대한 끊임없는 매진, 시들어가는 중생을 살아나게 하여 그들과 동생동사 하겠다는 굳은 신념, 부처님 세계의 건설, 그리고 서방정토에 왕생을 비는 내용이 담겨 있다.

원시신앙적 사유가 향가의 시대에도 이어지고 여기에 불교의 신통력이 합쳐 있습니다. 작품 안에까지 신라인의 주술관이 짙게 깔린 주가(呪歌)로서의 향가의 예로 <도솔가>와 <혜성가>를 예로 듭니다.

<도솔가>는 ‘산화불여’ㆍ‘미륵 좌주 뫼셔라.’ 등의 근거를 예로 들어 불교가요나 낭불습합의 노래로 보고 있으나 주가로 보기도 합니다.

전체의 흐름이 변괴를 제거하기 위한 내용으로 짜여 있어 주가임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다만 주가이지만 불교의식 상에서 불린 가요임에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치리가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어, 노래로서 하늘의 변괴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혜성가>는 진평왕대의 작품으로 <삼국유사> 융천사 혜성가조에 실려 있습니다. 융천사는 낭도 승려로서 거열랑(居烈)ㆍ실처랑(實處郞)ㆍ보동랑(寶同郞)과 풍악에 놀고자 하자 갑자기 혜성이 심대성을 침범하였습니다. 이에 융천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르니 혜성이 즉시 멸함과 동시에 왜병까지 되돌아갔다고 전합니다. 노래의 힘으로 하늘과 땅의 변괴를 제거하였으니 주가임에 틀림없을 뿐만 아니라 서정시적 가락으로서 불교적인 성향과 다른 주가입니다.

그 밖의 향가로, <안민가(安民歌)>와 <처용가(處容歌)>가 있는데, <안민가>는 충담사(忠談師)의 작품으로 이 노래는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서 제작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경덕왕 19년 4월 초에 두 해가 나타나 순일(旬日)을 두고 없어지지 않자 왕이 청양루에 행차하여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월명사(月明師)에게 기도문을 지으라고 하였더니 아뢰기를 신승은 다만 국선의 도에 속해 있으므로 ‘향가나 알 뿐이요 범성은 익숙치 못하다고 하니’ 왕이 향가라도 좋다고 해서 마침내 월명은 이 노래를 짓게 되었는데 이때 일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특히 노래가 불린 당시에 왕실의 평탄치 못한 사정과 왕당파와 반왕당파 간의 대립으로 신라 권력층의 내부갈등을 노래로서 다스리고 해소하기 위하여 경덕왕이 귀정문에 거둥하여 충담사로 하여금 시켜서 짓게 한 작품입니다. 군ㆍ신ㆍ민의 상호관계와 각자가 지켜야 할 본분을 밝히고 경제적 위기 등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구국의 한 방도를 제시하여 다른 향가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국을 배경삼아 충간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점은 민속이 환강하여 제정된 최초의 치리가인 <도솔가>의 경향에서 많이 벗어난 후대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용가>는 헌강왕 때 사람 처용이 자기 아내가 역신(疫神)과 사통을 하는 광경을 보고 읊은 노래입니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 전해집니다.

이 노래는 역신을 물리치고 벽사진경의 수단으로 쓰였으나 고려시대에 와서 무가로 판단되어 전승됩니다. 이는 일연이 구분을 확실하게 짓지 않고 기술하기에 생긴 판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처용이 자기 아내가 역신으로 비의된 간부와 정을 통하는 장면을 목격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읊은 때에는 뚜렷한 성역이 없는 체념에 의한 노래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용가>는 신라 말엽 상하를 가리지 않고 환락을 넘어 타락의 경지에 도달한 망국적 사회현상을 평민의 현상에 시각을 맞추어 남녀간의 성적 문란상을 용자(龍子)니 역신이니 하는 존재를 빌어 나타낸 가요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메모 서동요, 제망매가 → 1930년대에 연구되어 불린 제목)
참고자료

국문학신강편찬위원회, 국문학신강, 새문사, 1985.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1 (제4판), 지식산업사, 2005.
http://www.1392.org/bbs?laed31:664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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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용
630('21)-09-23 22:35
처용 이야기의 배경설화도 참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해요. 일설에는 울산항을 통해 출입하던 아랍인을 상징하는 것이 처용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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