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체결함에 있어 조선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접견대신 판중추부사 신헌은 고종에게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고종 13.2.6. 무진).

신헌 - 일본인이 말하길 세계 각국이 무력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지형은 좋으나 군비가 매우 허술하다고 하면서 부국강병 하는 방도에 대해 누누이 말하였습니다.
고종 - 그 말은 교린하는 성심에서 나온 것 같다. 우리나라는 군사 수효가 매우 부족하다.
신헌 - 신이 어영청을 맡고 있는데 정병이 많지 못합니다, 금위영도 마찬가지이고 훈련도감이 조금 많지만 역시 얼마 되지 않으며 외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천하의 대세를 보면 각국에서 병력을 사용하여 전후로 수모를 받은 것도 벌써 여러 차례이거니와 우리의 병력이 이렇다는 것은 세계가 알면 그 멸시가 앞으로 어떠할는지 모르겠으니 신은 몹시 걱정됩니다. 병지(兵志)에 '공격하기엔 부족하나 지키기에는 여유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삼천리 강토를 갖고 있으니 어찌 지켜낼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이것은 이른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분발하여 빨리 변란에 대비하도록 처분을 내리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신헌은 조선 후기 관료로 무관이자 외교관이었습니다. 무관으로서는 병인양요 당시 총융사로 강화의 염창을 수비하였으며, 1874년 강화 진무사로써 광성, 덕진, 초지의 진을 연안에 구축하여 해안 방비에 힘썼습니다. 외교관으로써는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고, 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위의 자료는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이었고 신헌은 무관으로써 군사력이 약한 조선의 상황을 안쓰러워하며 서둘러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고종 역시 신헌의 이런 충고에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만, 교린하는 성심에서 나왔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전통적인 외교에 일본을 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수신사로 김홍집을 임명하다.

1880년 4월, 고종은 강화도 조약(1876, 조일수호조규)의 후속 조치로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합니다. 수신의 대표는 김홍집이었습니다. 고종은 김홍집에게 '그곳 사정을 반드시 자세히 탐지'하고, '보고할 만한 일들은 모름지기 빠짐없이 하나하나 써 가지고 오라.'라고 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같은 해 8월 수신사 일행은 귀국하였고 고종은 그를 인견하여 일본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의 기사를(고종 17.8.28. 갑자) 일부 재구성한 것입니다.

고종 - 일본에서 각국의 말을 배우는 학교를 설치하여 가르친다고 하는 데, 그 학교의 규모는 어떤가?
김홍집 - 그곳에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각국의 언어를 모두 학교를 설치하여 가르친다고 합니다.
고종 - 우리나라의 역학(譯學)과 같던가?
김홍집 - 그렇습니다. 그 나라 조사(朝士, 조신 즉 신하)의 자제들은 모두 취학하게 하였습니다."

고종 - 저 나라의 66개 주를 지금 모두 통합하였다고 하던가?
김홍집- 66개 주를 폐지하고 36개 현으로 만들었으며, 현에는 합을 둔 것이 마치 우리나라 감사 제도와 같습니다."
고종 - 각주를 세습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지위를 상실했는데, 원망하는 뜻이 없던가?
김홍집-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듯 하나, 모두 녹봉을 후하게 받으면서 도성 아래에서 산다고 합니다.

고종 - 육군을 조련하는 것은 그 방법이 어떻던가?
김홍집- 모든 동작이 자못 군사 규범에 맞았습니다.
고종 - 저들의 무기가 지금 서양 각국을 대적할 수 있다고 하던가?
김홍집- 지금 배운 것이 서양 병법이므로 스스로 서양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종 - 그 병법에는 다시 네덜란드를 따라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어떤 나라인가?
김홍집- 네덜란드는 서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로 면적이 우리의 4분의 1이라고 합니다.
고종 - 나라는 이처럼 작은데 무슨 방법으로 능히 이와 같은가?
김홍집- 나라가 크건 작건 무기가 정예한 것은 또한 스스로 강하게 살고 실제에 힘쓰는 데 달려있습니다.

고종 - 순사들이 거리를 단속하는 것이 엄숙하다고 하던가?
김홍집- 그렇습니다.

비록 일본 근대화 정책의 자세하고 실제적인 부분은 알 수 없었으나 일본의 제도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세계정세 등을 확인하여 고종은 물론 조선 조정으로 하여금 개화의 의지와 생각을 갖게 한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김홍집은 복귀할 때 청나라의 주일 공사 참찬 황준헌의 저서인 <조선책략朝鮮策略> 1부 가져옵니다. 조선책략은 조선은 러시아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고 그 방법으로는 일본과 결합하고 미국과 연계하며 청국과 친교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고종과 영의정 이최응은 다음과 같은 대화(고종 17.9.8. 계유)를 나눕니다.

고종- 조선책략은 청나라 사신이 전한 것이니, 그 후한 뜻이 일본보다 더하다. 그 책을 대신들도 보았는가?"
이최응 - 일본이 오히려 성의를 다하는데 청나라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하여금 대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종- 그 책을 보니 어떻던가?
이최응- 러시아 사람들은 병선 16척을 집결시켰는데 배마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추워지게 되면 그 형세는 틀림없이 남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 의도를 진실로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대단히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고종- 일본 사람들의 말을 보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러시아로서 조선이 대비하기를 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조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라를 위한 것이다.
이최응- 맞는 말입니다. 조선이 방비하지 않으면 그들 나라가 반드시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나라야 어찌 방비하지 않겠습니까.

고종은 날카롭게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책략과 관련되어 일본인이 원하는 바는 바로 조선을 위함이 아닌 그들의 나라, 즉 일본을 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종- 방비책은 있는가?
이최응- 우리 스스로가 어찌 강구한 것이 없겠습니까마는 조선책략에 수록된 내용 중 믿을 만한 것은 믿고 채용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6월에 미국인이 동래부에 왔었는데 본래 원수진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만약 서계를 동래부에 바친다면 동래부에서 받아도 잘못될 것은 없으며, 예조에 바친다고 하면 예조에서 받아도 역시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이라고 하여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고종- 우리의 풍습이 본래 이러하므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 애당초 우리나라의 간사한 무리들이 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강화도와 평양의 분쟁을 일으켰으니, 이는 우리 스스로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국제정세를 확인할 수 없었던 조선은 수신사와 조선책략을 통해 본 그대로를 세계의 정세를 받아들이는 순진성을 보여주었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화 의지와 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해 12월 17일, 고종은 '아문설치절목(衙門設置節目)', 즉 쉽게 말해 관청을 설치한 법을 마련하여 조속히 보고하라고 명하였고 사흘 뒤인 21일, 의정부가 아문설치절목을 올리니 바로 '통리기무아문'이 개화추진기구로 설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생들과 백성은 그만큼의 의식이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고종과 일부 개화파 신료들의 의식은 크게 성장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영국산 면직물은 물론 석유, 성냥, 시계 등을 조선에 내다 팔았고 대신에 쌀, 콩, 쇠가죽 등 생필품을 사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쌀값이 오르는 등 민생을 위협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일본 공사가 지나갈 때 돌을 던지는 등 불만을 표출하였습니다. 지방 유생과 일부 관리들 역시 개화에 대한 불만을 상소로 하여금 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의 상소는 대부분 묵살되거나 처벌로 이어졌습니다. 개화는 이제 늦출 수 없는 조선 조정의 필수 사항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참/고/자/료
박시백(2012),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휴머니스트.
육군군사연구소(2014), 청일전쟁, 육군군사연구소.
최병옥(2000), 개화기의 군사정책연구, 경인문화사.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