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 시대(時代) 05 제13화

복위라니요, 주상! 그렇게는 못하십니다. 중궁을 폐한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거늘 복위라니요! 중궁이 실덕해서 빈으로 강등시켰는데 번복하십니까. 종묘사직을 생각하세요. 인정에 이끌리셔서는 안되십니다.

역정내는 어머님을 임금이

중전이 회임했습니다. 마마의 손주를 보셔야지요.

애써 달래보지만

손주라니요, 나는 그런 손주가 필요없습니다.

어머님은 완강히 뿌리쳤다.

대체 주상께서 어째서 보위에 오르셨는지 아십니까? 세조대왕께서 지옥불보다 더한 고통을 감수하며 지켜내신 보위입니다. 그냥 물려받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보답을 하셔야죠. 주상께서 성군이 되셔야 세조대왕의 명분이 우뚝 서실 것이 아닙니까? 생각해보세요, 주상. 주상께서 아무것도 이루지 않으시고 하시면 그 욕이 누구에게 돌아가겠습니까. 세조대왕이십니다.

대비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며느리를 내치는 어미의 마음은 편하겠습니까? 어미 앞에서는 눈치만 보고 있는 대신들이 뒤돌아서서 무슨 욕을 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지요. 예,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주상, 인정을 버리세요. 사소한 일에 얽매이시면 큰일을 못하십니다.

인수대비의 언성은 점차 오르더니

아시겠습니까, 주상! 성군이 되세요!

다시 역정을 낸다. 임금은 변덕스러운 어머니의 비위에 맞출 자신이 없었다. 조강지처를 버리느냐, 어머니를 버리느냐. 이는 인륜의 문제였다. 임금의 깊은 근심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인수대비는 그러나 일말의 인정은 있었다.

(내가 중궁을 폐해서 편하겠느냐? 왕실은 강산이 세 번이 아니라 아흔아홉 번이나 바뀌었으나 기강이 문란하다. 내가 손을 보지 않으면, 종묘와 사직이 흔들린다고 생각하여 본다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그래도 일말의 정이 있어 빈궁으로 낮췄건만.)

다소 도를 넘나드는 중궁의 행실. 그것이 인수대비의 가슴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란 임금이었다. 그런 처지이고 보면 사랑에 굶주릴 법하다. 인수대비 슬하에서 세 남매 중에 막내―위로 월산대군과 명숙공주 두 분이 계시다―이고 보면 붙임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병이 되어 있었다.

(웬 잔정이 그리 많으신지.)

인수대비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무 병적으로 착하기만 한 상감. 그런 상감을 안타까워 했다. 가뜩이나 대가 센 며느리 윤씨가 곤전의 몸에 있으니 공처가(恐妻家) 신세를 면키 어렵다. 상감이 자주 자수궁에 입궐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인수대비가 납시지 않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상감은 대전 상궁과 내관을 시켜다 은밀히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인수대비가 권력을 쥐어 잡자, 정귀인과 엄소용이 누구보다 기뻐하였다. 아부에 맞먹게 두 사람은 입을 맞추듯 자수궁에서 악쓰며 욕설을 퍼붓더라며 이간질을 시켰다. 인수대비는 자연 두 후궁을 제 수족으로 끌어들였다.

상감의 여린 성정을 이용해, 조강지처인 덕빈을 중궁으로 복위시키라고 젊은 관리들이 간청하였다. 이런 움직임에 보다 못한 한치형이 중재에 나섰지만,

조강지처 하나 버리지 못하는 임금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부모를 버리는 것이 임금입니다. 심지어 자식까지 버리는 것이 임금이에요. 그만큼의 희생없이 어찌 한 나라의 임금이 되겠습니까? 큰일을 하자면 그만한 희생은 달갑게 여겨야지요. 필부의 인정입니다. 조강지처 운운하는 것은.

인수대비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비상을 몸에 지니고 있던 鷄緝이 아니냐. 주상을 해치고도 남을鷄緝이야.능지처참(陵遲處斬)하고도 시원찮을鷄緝 같으니라고.)

김시습

632('23)-12-05 0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