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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시대(時代) 05 제02화
내훈을 편찬한 뒤 인수왕비는 대행왕비의 상을 마친 뒤 대비(大妃)의 자리에 올랐다. 인수대비는 이 년 동안 중궁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매우 불안해했다. 비어 있는 중궁의 자리를 두고, 누가 중궁의 자리에 오르는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그중에서 윤기견의 딸인 윤 숙의가 구설수(口舌數)에 오르고 있었다. 상감이 유난히 총애하고 있으니 따놓은 당상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나 대왕대비와 인수왕대비가 간택해야 했기에 여간 곤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윤 숙의는 어젯밤에 김 숙의의 처소에 찾았다는 소문을 듣고 토라져 있었다. “미안하네, 어머니께서 하도 재촉하셔서.” “또 어머니 핑계를 대십니까?” “난 김 숙의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상감은 윤 숙의의 토라진 모습에 매력을 느낀 모양이었다. 상감은 어느덧 열여덟의 나이가 되었다. 가뜩이나 상처(喪妻)한 상감이 아니던가. 상감의 그 허한 마음을 윤 숙의가 채워주었으니 매일같이 윤 숙의의 처소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감의 풍채가 다소 늠름하였다.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을 필두로 한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은 대왕대비가 언제 어떻게 물러날까 싶어 눈치를 보았다. 원상(院相)들과 의논하여 친정(親政)을 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대왕대비가 나섰다. 정창손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왕대비 마마의 말씀을 새겨서 들으세요.” 영중추부사 김수온(金守溫)의 말에 창손이 묻는다. “무슨 말씀이시오?” “겸양(謙讓)의 말씀을 달리 듣지 마시라는 것이옵니다.” 수온이 대왕대비전의 측근이었다. 그만큼 대왕대비전의 속내를 알고도 남았다. 그 말인즉슨 수렴청정(垂簾聽政)을 거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원로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났다.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 “대왕대비께서 수렴청정을 거두시겠다고 하셨습니까?” 하고 묻기에 창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뜬장님처럼, 그것도 조정의 수장격인 영의정이 모르고 있었으니 난감해졌다. 자칫하다가 신진사류(新進士類)들이 친정을 권하려고 들고 일어날 것이니, 창손의 한숨이 절로 났다. 하지만 당자인 상감도 정치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내게 그만한 힘이 있을까?’ 현석규(玄錫圭)와 허종(許琮) 등이 신진사류로서 대표해 상감을 보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힘이 부족했다. 인사에도 눈이 어두웠다. “밤하늘에 별만큼 무수한 것이 인사이거늘 그래 상당군에 대적할만한 인물이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더란 말이냐.” 공연히 짜증을 부리는 상감의 옥음을 들으려니 신진사류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상당군의 세도 아래에서 대왕대비전의 수렴청정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날밤 야심한 시간에 도승지에 있는 현석규가 수장으로 있는 모임에는 성임(成任), 채수(蔡壽)를 비롯해 허종과 정난종(鄭蘭宗) 등이 회합을 가지고 새로운 정치 흐름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때 한명회가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극증이 전한 까닭이다. 이때 이극증은 호조판서로 있었다. “이들이 모두 신진사류이거나 사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뿐이라면 염려할 것이 없네. 상감께서 아직도 인수대비의 치마 속에 있거늘.” 그깟 오합지졸(烏合之卒) 같은 어린 신진관료들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이 자신을 대적한다고 생각할 때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덤빈다고 생각할 때 매우 처량하기도 했다. 한동안 자신이 권세를 누렸을 때만 해도 인수대비에게 온갖 고초를 겪었다. 자신의 막내딸을 왕비에 앉히기 위해 처첩을 수빈의 사저 문밖에서 무릎까지 꿇리기까지 하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얻은 권세이건만 이제는 지쳤다. 염증(厭症)이 생겨났다. 이때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둔다고 나섰으니 권력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수렴청정을 거둘 것인지 두고 대왕대비전에서 먼저 말씀이 꺼내진 뒤에 조정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기에 홍응(洪應) 등의 원상을 불러들여 자신의 뜻이 확고함을 드러냈다. 반면 인수대비가 다시 권세를 차지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대왕대비의 의지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이 추풍낙엽(秋風落葉)으로 쓸려갈까 보아 조마조마했다. 그만큼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언제 끊길지 모르게 경각(頃刻)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대왕대비의 의지는 더욱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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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