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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암투(暗鬪) 마지막화
2월, 보문궁의 중건을 명했다. 보문궁은 한성부 남부에 위치하였는데 이곳 또한 별궁으로 삼았다. 일이 이리되자 신하들이 모두 다시 한성으로 천도하라고 말했지만 비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한때 보문궁이 절로 쓰여졌으나 왕명이 지극하여 근처에 있는 일엽사(一葉寺)로 승려들을 보냈다. 3월, 의정부 인사들을 명했다. 영의정에 설승필, 좌의정에 설성주, 우의정에 서문수, 좌찬성에 백일, 우찬성에 감무, 좌참찬에 임동원, 우참찬에 강규, 의정부사인에 단문, 의정부검상에 석리, 의정부사록에 여명을 명했다. 이들이 훗날 왕의 등뒤에서 비수를 들이대듯 금상을 폐위하는데 가담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4월, 왕이 한성부에다 별궁을 마구잡이로 지은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 이때 한성부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소요(騷擾)가 일어났다. 이때 돈령부에서 문제를 삼으니 왕이 말하길, “그곳은 내가 다스릴 땅이니 그 누가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가. 만약 그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내 직접 군사를 풀어내서라도 저들의 입을 틀어막겠다.” 하였다. 5월, 서상범이 왕의 폭정(暴政)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목을 매 죽었다. 그의 집안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드높았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문상을 다녀갔다. 6월, 서의 뒤를 따르듯 현사가 세상을 떠났다. 현사 또한 자진하였다. 현사는 칼을 가져다가 자신의 목을 찌르고 죽었다. 이렇듯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생각하는 노신(老臣)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저버리자 백성들의 장례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7월, 윤금헌의 딸이자 선왕의 후궁인 윤씨를 범하다 못해 시해하였다. 일이 여기에 다다르고 나서 의정부 대신들과 돈령부 대신들이 합심하여 왕을 폐위시키기로 하여 영의정과 영돈령부사가 자청하여 조선왕에게 본국에서 일어났던 저간(這間)의 사정을 알렸다. 이렇듯 정국은 어수선하게 돌아가자 추영재는 ‘원로들이 연달아 세상을 하직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라가 장차 망할 징조이기는 하구나. 만약 임금이 폐위되는 날에는 나는 물론, 우리 추씨 집안의 문이 닫힐 것이 분명하구나. 아, 하늘이시여! 정녕 이내 집안의 문을 닫게 하십니까.’ 깊게 탄식했다. 8월, 조선왕이 대장군(大將軍) 라임(裸任-라님)과 함께 본국을 친정(親征)하였다. 의정부와 돈령부 인사들이 소식을 듣고 우르르 광흥궁에 모여와서 “폭군(暴君)은 폐위되었다. 온 나라가 당신의 극악무도(極惡無道)함으로 인해 몸살을 앓으니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위태로움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대를 금일로 폐위하노니 서둘러서 폐위(廢位)의 절차를 밟으시오.” 왕에게 윽박지르자 왕이 “적반하장에도 정도가 있지 네까짓 들이 나를 폐하려 드느냐!” 맞받았다. 이때 조선왕이 들어서자 대신들이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저런, 저런. 나라를 능히 팔아먹었구나. 너희들이 기어이 나라를 바쳤구나! 너희들이 이러고도 살기를 바랐더냐!” 폐주가 악쓰자 “시끄럽다! 폐주는 예의를 갖추라!” 라임의 호통과 함께 조선국의 군사들이 폐주를 포박(捕縛)하여 무릎 꿇렸다. 이때 조선왕이 친히 펴서 칙서(勅書)를 내렸다. 그 내용은 이렇다. “그대 폐주는 단지 사사로운 원한에 싸여 할머니와 어머니들을 죽이고, 본국의 사신도 죽였으며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여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 궁궐들을 무리하게 지었다. 백성들이 노역에 지쳤을 뿐만 아니라, 세금을 무리하게 징수(徵收)하니 왕으로서 많은 전횡을 일삼았다. 이에 짐이 그대를 폐하노니 그동안에 지었던 죄를 반성하고 참회하라.” 이때 폐주는 조선왕에게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게 되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조선왕은 손수 옥새를 그들에게 주며 “황태후 마마께 이 옥새를 전하시오.” 정중하게 대했다. 대신들이 덕원황태후를 찾아가 옥새를 주었다. 황태후가 말하길, “누구보고 보위를 물려 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보고 어떡하라고.” 하였다. 황태후가 딴청부리는 것이다. 대신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다 “진빈대군이 타당(妥當)하옵니다.” 하니 그제야 황태후가 수긍하며, “좋소. 내 경들의 말씀대로 그리합니다. 그러나 나는 태황태후의 지위에 오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폐주의 부인과 자식들은 살려주십시오. 아버지를 잘못 둔 죄 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군으로 강등(降等)하는 한이 있더라도 폐주의 소생들을 살려주시오.” 대신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자 대신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폭군의 학정에 시달렸던 정국이 안정되었다. 황태후의 명을 받들어 그 이튿날로 진빈대군의 집에 대신들이 찾아갔다. 처음에 대군이 몸서리치며 거부하였으나 대신들이랑 실랑이하다 옥새를 받았다. 진빈대군에게 부인이 있었는데 평민의 몸이었다. 그런데 진빈대군의 부인이 지난해에 별세하니, 설승필이 왕비의 자리에 자신의 딸을 앉히는 것으로 합의해 성사시켰다. 이렇게 진빈대군은 보위에 올라 광흥궁 정문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이때 신민들이 만세 소리로 기쁨을 노래하니 이를 듣던 덕원황태후의 눈에서는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피어올랐다. 정신이 망가진 폭군의 최후는 둘째치고 자신이 그동안 가슴을 졸이던 것이 엊그제 같았기 때문이리라. 왕은 즉위하고 난 뒤 자신의 존호를 그대로 사용하여 연호로 삼아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진빈 원년 9월에 설승필의 집에서는 때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이곳에 의정부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좌찬성이 “댁의 따님이 왕비로 간택되는 것이 맞습니까?” 물어보자, “맞습니다.” 하고 수긍했다. 이때 의정부사인이 “좌상대감의 여식 또한 자색(姿色)이 뛰어납니다.” 하며 좌의정의 편을 거들고 나섰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설승필의 딸 기옥(旣玉)과 설성주의 세 딸 곧 품운(品運)과 성화(性火), 그리고 막내딸을 왕비 후보로 올렸는데 황태후가 기옥 처녀와 성주의 막내딸을 모두 왕비로 맞이했다. 이때 황태후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 처녀의 모습을 보고 우위(優位)를 가릴 수 없어 부득이 두 왕비를 두게 되었다. 이에 두 왕비를 맞이하여 두 중궁에게 말하길, ‘폐주가 어그러진 데에는 필경(畢竟) 여자들에게 있으니, 서로 투기(妬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 왕실의 어른으로서 몸가짐을 바로 하고 더욱 겸손하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러니 신민들을 안심하여 생업에 열중토록 하여라.” 이때 간택되었다는 소식이 설승필의 집에 먼저 당도하였다. 그러자 설기옥 처녀가 “다른 사나이와 함께 살겁니다.” 아버지에게 생떼를 쓰다시피 하며 철없이 떼썼으나, “이리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나오신다면 왕실을 능멸(凌蔑)하는 겁니다. 어서 겸허히 받드소서!”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국모의 자리에 올랐다. 왕명으로 기옥 처녀를 호헌왕비(皓憲王妃), 성주의 막내딸을 세중왕비(世中王妃)에 책립했다. 그리고 설품운과 설성화 두 처녀는 모두 주 공화왕에게 측실로 보냈다. 왕비 책봉이 있고 난 지 보름 뒤에 아사달까지 끌려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던 선왕이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자진하였다. 폭군으로 불린 그에게 신하들은 왕에게 노종희덕대왕(奴宗熹德大王)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하였으며 왕비는 개천대군부인(開川大君夫人)로 격하하도록 청하였다.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추영재의 딸을 은밀히 불러들인 이가 있었다. 뜻밖에 덕원황태후였다. 황태후전에 불림을 받은 추씨는 황태후에게 당도하자마자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태후마마, 마마께서 이리 맞이해주시니 그 어지신 마음으로 신첩의 목숨을 살려주시다니.” 말을 채 잇지 않고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황태후가 “나는 좋아서 폐위시켰겠습니까. 나라 사정이 매우 여의치 않아서 그리되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하십시오.” 추씨에게 존대하였다. 뒤이어 황태후가 조정 대신들을 불러들이도록 의지(懿旨)를 내렸다. 이번 의지에서 폐주의 사돈인 추씨 집안을 살리라고 간곡히 권하였는데 중추부 대신들이 반대하고 나섰으나 돈령부와 의정부 대신들이 모두 의지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추씨 집안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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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632('23)-02-2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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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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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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