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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칠삭둥이 제1편
[1] “아유, 박복(薄福)한 것.”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아흔아홉 칸 정도 되는 기와집에서 한숨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소리와 아울러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하인들도 덩달아 운다. “아유, 가엾은 것.” 늙은 부인네의 푸념이 이어질라, 못내 걱정된 산모는 남몰래 울기에 여념이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산통(産痛)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에 아이를 낳아놓으니 보통 갓난애보다 매우 체격이 작은 것이 문제였다. “명색이 정승 집 자손인데 이렇게 온전하지 못하니 이를 어쩌면 좋누.” 시어머니가 그러면서 혀를 연신 찬다.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며 어찌할 바 모르니. ‘저 애를 거리에다 확 내버릴까.’ 시어머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긴 하나 덮어놓고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약하디약한 아기가 온 천하를 호령(號令)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줄 이 두 여자라고 알았을까. 그런 줄도 모른 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깊은 한숨만 더해만 간다. 산모가 몸을 푼 다음 날. 시어머니가 언제런가 돌아가고 시아버지가 위로랍시고 며느리를 찾아왔다. “아가.” 시아버지가 넌지시 며느리에게 말을 걸어본다. “네.” 며느리는 목이 메어 간신히 대답한다. “내 너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퍽 미안하구나.” 그러면서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손을 잡는다. “이 못난 시아비를 용서하렴.” 그제야 며느리는 아버님 하며 한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실컷 토하였다. 시집살이가 매우 고달팠던 것일까. 시아버지는 못내 미안함을 내색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명색이 정승집 당주(當主)이며 동시에 새 나라를 이룩하여, 나라의 이름을 대국(大國)으로부터 받아온 내력이 있었다. 그런 집안에 연약한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건 태어난 것. 기왕 세상에 나왔으니 아이가 태어났음을 조상들께 고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당주는 서둘러 몸종에게 문밖에다 고추와 숯으로 엮은 짚을 문 앞에 내걸게 하고, 아랫것에게 일러 사당에 갈 채비를 차리게 하였다. 그러고서 자신은 조상님 전에 고할 글을 종이에다 적어 내린다. 이윽고 당주가 예를 갖춰 사당에 찾아가 조상님들께 손자가 태어난 것을 고하였다. 조상님들께 손자가 태어났음을 고하기를 마치고 사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 송씨(宋氏)가 일어나 맞이했다. “영감, 대체 이를 어쩌면 좋수.” 당주 한상질(韓尙質)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덮어놓고 내버릴 수도.” 순간 “그 귀한 아이를 어떻게 얻어냈는데 내버리다니!” 영감이 버럭 역정을 내는 게 아닌가. “아니 난데없이 왜 역정은 내시오?” 부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아이는 장차 천하를 호령할 아이요. 비록 몸이 미약하다고 하지만 두고 보시구려. 자라나서는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칠 테니.” 자손을 귀하게 여기는 집에 그런 아이가 태어난 것도, 내심 불행하기도 하겠지만 장차 이 손자가 천하를 요리(料理)할 영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장담하는 것이다. “그러니 며느리 구박은 그만하고, 아랫것들에게 시켜다 미역국 한 그릇 끓여다 며늘아기에게 주시구려.” 이렇듯 영감의 혜안(慧眼)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윽고 작은 사랑에 들어서니, 아들 기(起)가 일어나서 맞이한다. 부인의 산고를 걱정한 까닭이리라. “아버님, 오셨습니까.”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있었다. 시아버지의 명대로 며느리에게 미역국이 대령 되었던 모양이다. 빈 그릇이 있는 게 아닌가. “아가야, 고생이 많았구나.” 다정스런 시아버지의 말에 며느리 이씨(李氏)는 말문이 막혀 흐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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