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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두 명의 여왕 제1편
두 명의 여왕 <보덕 작> 보덕 27년 정월, 영의정 이각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의정부의 인사가 바뀌었다. 영의정에 최민, 좌의정에 대현, 우의정에 편선, 좌찬성에 호선, 우찬성에 봉학인, 좌참찬에 초도연, 우참찬에 전언대군, 의정부사인에 허정대군, 의정부검상에 황슬군, 의정부사록에 허정대군을 명했다. 대대적으로 의정부의 인사가 바뀐 것을 안 원로들이 이를 부당하다며 아뢰자 왕이 대노하여 사직상소(辭職上疏)를 올릴 것을 다그쳤다. 이월, 왕이 채린공주의 청에 따라 궁방을 공주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삼월, 신호원비 황보씨를 황봉궁주로 봉하여 황봉궁에 기거하도록 명했다. 오월, 황태자비에 황승의 손녀이자 황진태의 딸을 맞이하였다. 이름을 황주부인(黃紬夫人)이라 하였다. 유월, 방수호의 딸을 주변궁(奏變宮)으로 삼았다. 칠월에 치른 과거에서 홍가의 아들 홍흥선(洪興善)이 급제하였다. 왕이 그에게 선조성우상시(宣詔省右常侍)에 명하였다. 이후의 치세는 태평성대였다. 보덕 30년 이월에 왕이 세상을 뜨자, 황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선왕의 황후는 태후에 봉해져, 왕실의 웃어른이 되는 것이 순리(順理)로 여겨져 왔지만 선왕이 생전에 여러 명의 왕후와 여러 명의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황태자는 더구나 후궁에게서 태어난 서출(庶出)이었고, 때문에 황후 가운데 한 사람이 후견인 노릇을 맡았다. 그러다보니 황태자는 보위에 오르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지지기반을 다지지 못했으니 한 나라의 국운이 어느 때, 어느 날짜에 기울어져 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황후 천씨(千氏)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아이를 낳았기에 태자를 대할 때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선왕이 자신보다는 다른 황후에게 후일(後日)을 부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이에 안심보다는 괘씸함이 치밀었다. ‘선왕도 무심하시지. 나도 태자의 뒷배를 든든하게 하면 될 것을. 공연히 다른 황후에게 넘기시다니.’ 물론 왕실에 우환을 끼치지 않게 하려는 선왕 나름대로의 생각이었겠지만 천씨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천씨는 황제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태자에게 찾아가 자신의 왕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갑자기 자청(自請)해서 얘기하는 왕후의 모습을 보고 왕이 멈칫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해서 차후(此後)에 의논하기로 매듭지었다. 그러나 왕의 장례가 끝날 즈음이 되어서도 의논은 이루어지지 않았아 정선왕후가 재촉하자 왕이 그녀에게 봉원(鳳苑皇太后)에 봉했다. 삼월에 왕이 연호를 ‘선안(宣安)’이라 하고, 왕후를 황주왕후라 봉하였다. 사월에 왕이 왕후의 동생인 황주(黃周)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동안왕후(東安王后)라 바꾸어 부르게 했다. 오월에 왕후의 처소에, 황주가 야심한 밤에 찾아와서 모의한다는 소문을 듣고 태후궁 내인이 황태후에게 찾아갔다. “태후마마, 중궁의 처소에 웬 남정네가 문지방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든다는 소문이 떠돕니다.” “그래? 그 사람은 벼슬한 사람이더냐?” “자세히는 모르오나 그렇지 않다는 소문이.” 태후는 이때다 싶어 중궁전에 들어섰다. 갑작스런 방문에 왕후가 놀랐다. 왕후의 보료에 앉으며, “왕후전에 웬 남정네가 무상(無常)으로 드나든다는데 사실이오?” 하고 왕후에게 물었다. “네?” 왕후가 놀란다. “중궁전을 제 집을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온 궁 안에 퍼졌거늘 시치미를 잡아떼시는 게요?” 황태후가 다그치자 왕후가 놀라며 “아, 아닙니다.” 대답하고 황망함을 감출 수 없어 고하길, 자신의 아우에게 은밀히 부탁해 자신의 신병(身病)에 좋은 약재를 구해달라고 청한 것이다. 그것을 얘기하니 황태후가 “그럼 어의에게 얘기해보셨소?” “해보았지만 별무신통(別無神通)이었습니다.” “허허, 이런 딱한 데가.” 대궐은 벼슬아치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기에, 아무리 왕후의 친인척이라고 하더라도 나랏일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무상으로 드나들지 않는 게 통념(通念)이었다. 그래서 황태후가 왕후의 동생을 벼슬자리 하나라도 내놓게 하고픈 욕심이 컸다. 그러나 황씨 집안은 오래전에 역모에 가담한 일이 있어 조상들의 죄업을 씻고자 일절 벼슬을 나서지 않고 있는 입장이었다. 해서 그 내막을 알고 있는 태후가 속을 태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벼슬아치들은 자신의 부모 덕분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왕을 보필하는 중임을 맡았다. 그런데 벼슬아치도 아닌 황주가 대궐에 드나든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유월에 치른 과거에서 황주가 급제한 것이다. 이에 왕이 중대성간의(中臺省諫議)에 명했다. 이후에 여러 달이 지나가자 소문은 사그라졌다. 황태후가 입단속을 시킨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월에 선왕의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이를 선조성에서 행하게 했다. 이것이 관례가 되어 선왕이 하세한 이후에 실록을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십일월에 인비제씨를 왕궁에서 나와 별궁에 살게 했다. 왕이 명하길 “차후(此後)에 선왕의 후궁(後宮)들은 모두 궐외(闕外)에 나가 살게 하도록 법전에 명시하게 하라.” 이에 따라 비록 왕의 생모일지라도, 후궁의 몸이라면 응당(應當) 궐 밖에 나가서 살게 하니 이 소식을 들은 인비는 마음속으로 아들을 원망하였다. ‘내 배 아파서 낳은 황상에게 이렇듯 쫓겨나니 얼마나 큰 슬픔인가.’ 궐 밖을 나설 때 인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니 다른 궁인들도 이를 슬퍼하기에 이르렀다. 왕은 생모인 인비를 흥덕궁주에 봉하였다. 선안 즉위년 12월에 옛 구화궁 터와 가까운 곳에다 따로 집을 짓도록 명하고 이곳을 흥화궁(興和宮)이라 지었다. 선안 1년 정월에 궁희종의 딸을 중궁에 봉하고, 연지왕후(燕地王后)라 했다. 이월에 선왕의 후궁인 현비를 자애궁주로 봉하여 자애궁에 살게 했다. 삼월에 선왕의 후궁인 숙비를 흥덕궁주로 봉하여 흥덕궁에 살게 했다. 사월에 나주왕후에게 덕원황태후(德源皇太后)로 봉하였다. 오월에 남창왕후에게 의현황태후(義玄皇太后)로 봉하였다. 유월에 남산왕후에게 광해황태후(光海皇太后)로 봉하였다. 이로써 여러 명의 왕후가 황태후가 되니 당자(當者)로서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하는 수없이 왕의 뜻에 따라야만 했다. 자신들의 친인척도 왕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칠월에 선왕의 시호를 익종보덕안력탕평대왕(翊宗普德安歷蕩平大王)이라 하였다. 팔월에 신호원비를 흥인궁주(興仁宮主)에 봉하고, 구덕수의 딸을 상의(尙儀)에 봉하였다. 구월에 삼전군부인이 하세했다. 삼전군부인은 자손들을 잘 두지 못한 탓으로 가평군부인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에 왕이 가평군부인으로 하여금 다섯 아들 가운데 양자를 두도록 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군부인이 죽고 나니 가평군부인의 삼남인 송성군이 몸소 양자로 입적하기를 청하니 왕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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