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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종이꽃 제38편
이후 경빈과 보국의 관계는 더욱 굳건해졌다. 단지 동네 아는 오빠 동생의 관계에서 벗어나 연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덕분에 공씨네와 이씨네의 관계도 덩달아 돈독해지고 훈훈한 느낌마저 풍기었다. 때때로 공씨네 집에 원조가 놀러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빈의 마음이 마냥 쉽게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경빈이에게 두 가지의 산이 존재하였다. 하나는 결혼 후 자신의 거취 문제가 그러했고, 다른 하나는 명색이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까닭에 가정생활과 병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부모님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보았자 불문곡직(不問曲直)으로 자신에게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에만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차라리 보국이 오빠와 의논하는 게 더 수월할 거 같고 시부모님 되시는 분들이니, 어른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수밖에는 없을 터.’ 경빈이 큰맘을 먹고 보국에게 자신의 거취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심중에 담은 의문을 진실 되게 이야기하는 걸 지켜본 보국이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히려 경빈이한테 짐이 되는 게 더 미안한데.” 자신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듯 보국이는 얕은 한숨을 내쉰다. “오빠, 그러면.” 경빈이 곰곰이 생각해보고 하더니 “만약 우리가 신접살이를 한다고 하면 지금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는 동안 파출부 하나를 구해서 살림을 맡기는 게 어떨까요?” 보국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보국은 씩―웃고 동의를 표했다. 보국이 경빈의 부탁을 받아들여 공 참봉 내외에게 동의를 구하였다. 그러자 어머니 나씨가 놀라며 “파출부라니? 경빈이가 살림을 배워야할 처지일 텐데 그게 될법한 소리냐.” 학을 떼려는데 공 참봉은 말없이 헛기침을 하며 “굳이 살림을 배워야하는 건 뭐람. 차라리 부려먹는 편이 훨씬 낫지.” 은근히 보국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더니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고 집안 살림에는 소홀히 하는 모양을 볼 때 나씨는 구들장이 꺼지게 에휴―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독립 하느니 만도 못하지. 그냥 예서 같이 살면 안 되느냐?” “네?” 순간 보국의 눈이 휘둥그러진다. “그러잖아도 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이 온종일 너무나 적적했는데 자식이라고는 너 혼자 밖에 없는데 경빈이를 며느리로 보다는 딸처럼 대하면 되지 않겠느냐.” 공 참봉의 입가엔 은근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 곁에서 공 참봉의 모습을 보던 나씨는 기가 막혀 하더니 까르르 웃는다. “영감,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랴. 그러잖아도 그렇게 하는 게 퍽 편하겠구나. 그러잖아도 우리 집에 일꾼에 파출부까지 있는데 굳이 신접살림해서 새로 파출부를 쓸 바에야 차라리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며 정답게 살아가자꾸나.” 보국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단 듯 멍하니 나씨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정 살림하기 힘들다고 하면 차라리 우리 집에서 살면 되지 않겠니. 경빈이가 애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고 하고 천직(天職)으로 여기는 모양이니 그걸 막아서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니? 우리 집엔 알다시피 보국이 네 방에다 신혼살림을 꾸며서 살면 되잖니.” 다정스레 대하는 나씨였다. 며느리를 맞이하는 그의 마음은 은근히 들떠 있었다. 설렘도 있고 시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에 어떤 것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공 참봉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였다. 결국 부모 양친의 동의를 얻은 다음날로 경빈에게 통보하니 기뻐하며 공 참봉 내외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너무 쉽게, 싱겁게 끝나버린 채 경빈과 보국은 종로5가에 있는 D예식장에서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경빈은 공 참봉 내외의 당부대로 시부모와 함께 같이 살게 되었다. 보국은 경빈의 외조(外助)에 힘입어, 비록 독자(獨子)인 관계로 군대의 의무를 면제받았다지만 전공을 살려 행정고시를 공부, 패스하여 세무서에 근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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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