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유생 김형준 등의 상소 문제에 관하여

행사인 이휘, 행정랑 강자아, 전헌납 서양갑, 전정랑 이동진, 행좌랑 조운, 감찰 이백, 부봉사 한백겸, 유생 김형준, 김한울, 윤성민 등의 차자(箚子:약식 상소) 및 상소에 대하여 비답을 내린다.

유생 김형준의 상소로 인하여 조정에 양위 및 역적 관련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금번에 이러한 논쟁이 있게 된 것은 대개 과인의 지난 2월 25일에 행사인 이휘의 차자에 비답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천명(天命)에 따라 의(義)로써 결단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어찌 민심이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과인이 근래에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정무를 돌보지 못하였으니, 오늘날 이러한 상소가 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양위나 전위를 입에 담았다고 하여 모두를 역적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은 전사성 박심문의 녹훈 논의 과정에서 대체로 결정된 바가 있다. 전사성 박심문이 조정에 기여한 바가 있어 역적 처분을 면했다고 말한다면, 유생 김형준은 조정 분위기나 유생의 본분 등에 익숙하지 못해 그러한 상소를 올리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므로, 역적이라 이름하여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전헌납 서양갑의 경우도 대략 그와 같다.

정랑 강자아가 임오지변(壬午之變)의 참담함을 말하고, 전한 정재안, 좌랑 조운, 감찰 이백 등이 금번 사태를 덮고 넘어갈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를 훗날의 폐단을 말하지만, 사인 이휘, 참의 이완 등이 전헌납 서양갑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조정 공론이 반드시 거기에 있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만, 내외(內外)에서 호응하는 바가 없을 때는 그것을 결행하기 어려운 법이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군주가 먼저 언급한 후 초래된 것이니, 서둘러 역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상소를 유생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사태를 그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허나, 전헌납 서양갑, 유생 김형준 등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적이라 단죄하는 것은 불가할지 모르겠지만, 군주에게 불경하고 조정 전체를 불신한 행동까지를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유생 김형준의 상소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리하고 넘어간다면, 도리와 염치에 있어 그러한 비난과 비판을 받은 조정 신하들 모두가 지금 관직에 그대로 있을 수 없게 된다. 무능한 신하라는 이름을 얻고도 어찌 그 자리에서 관직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이나 다짐을 글 또는 말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중시되어야 하겠는가. 반드시 하나만을 가려야 한다면 본의가 무엇인지를 살펴 헤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겠지만, 외부로 나타난 모양이나 격식을 따져 살피는 것 역시 무작정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말과 글과 같이 겉으로 드러난 것을 지켜 행하는 것이 예(禮)의 근간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분란의 대부분이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본의와 행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잣대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금번 사태는, 나라의 기강과 언로 문제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어 사체(事體:사리와 체면)가 매우 중대하므로 어느 한 관청의 의견을 물어 결단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의정부에서 사헌부, 예조, 형조 등과 협조하여 논죄 여부 내지는 조치 수위 등을 논의하여 보도록 하라.


유생 김형준이 초7일에 상소한 것에 대하여 비답한다.

지역별 특색화 제도는 장기간 논의와 준비를 거쳐 지역별 주제를 설정한 후에 점진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니, 갑자기 없던 것처럼 하기가 어렵다. 또 선거를 통해 임금을 선출한다면 군주제의 기간이 흔들리니, 더 이상 조선(朝鮮)이 아니게 된다. 여타 다른 곳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본조(本朝)의 존재 의의(意義)는 단순하게 조선조를 체험한다거나 역사와 관련된 학습을 하게 하는 것에 있지 않다. 민국의 여러 병폐에 대해 고심하고 선한 일을 장려하는 등의 비판적 기능 또한 매우 중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모두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 한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정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 관계되는 비답이겠지만, 유생 김형준이 해당 상소에서 마지막으로 아뢴 문제에 관하여는 추후 과인이 다시 의중을 표명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 개국612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