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上) 19년, 개국632(2023)년 계묘(癸卯)
○ 좌목(座目) * 이조참판 겸비변사제조 한명회 (유사당상) ~ 06.20 ┖ 06.20 ~ 12.27 예조참판 겸비변사제조 ┖ 12.27 ~ 이조참판 겸비변사제조 * 사재감정 겸비변사낭청 박세당 ~ 03.20 ┖ 03.20 ~ 06.20 선공감정 겸비변사낭청 ┖ 06.20 ~ 12.27 상서원정 겸비변사낭청 ┖ 12.27 ~ 예빈시정 겸비변사낭청 * 행한성부서윤 겸비변사낭청 김신 ~ 02.05
서연진강례를 거행하다.
○ 임인년 10월 26일 시강원에서 서연진강례 홀기를 마련해 올리며 첫 서연을 홀기대로 진행하고 그 이후에는 평소처럼 시행하는 것으로 아뢰니, 31일 재가하며 인의 1원을 차출하여 계조당에서 실시하도록 하였다.
○ 11월 28일 시강원에서 일자를 삼망하자 12월 18일로 재가하였는데, 첨지중추부사 겸세자익위사좌익위 김시습이 등청하지 않아 예식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익위관이 차자를 올려, 갑작스러운 한파로 인한 사정을 아뢰며 죄를 청하니, 상께서 일단 소임을 다하도록 하교하였다. 계묘년 1월 5일에 다시 일정을 삼망하니, 2월 19일로 재가하였다.
○ 2월 19일 동궁전 계조당에서 서연진강례(書筵進講禮)를 거행하였다. 세자와 봉상시정 겸통례원인의 홍봉한, 동지중추부사 겸세자시강원우부빈객 서민교, 첨지중추부사 겸세자익위사좌익위 김시습이 참여하였다. 세자와 서연관 · 익위관이 예를 갖춘 뒤, 서연관이 『맹자(孟子)』「고자(告子)」 하편의 15장을 진강하였다. 세자가 암송한 뒤 서연관이 진론하기를,
“고난을 인내하고 험로를 마다하지 않듯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성공의 자산으로 삼는 것이야 말로 참된 지혜라고 할 것입니다.
자신의 학문을 닦는 자세로 받아 들임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주위를 살펴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자를 가까이 하라는 의미가 더하여 있을 것입니다.
삼가 저하께서는 성인의 말씀을 늘 염두에 두시어 불굴의 심기를 굳건히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삼가 오늘 자리에서 성심으로 진강한 내용은 진실로 마음에 기억해야 할 사항입니다. 거듭 암송하고 기억하겠습니다.”
하였다. 다음날 시강원에서 결과를 아뢰니, 21일 비답하기를,
“참여 관원의 노고가 적지 않다. 세 관원에게 특별히 물품을 하사하고자 하니 호조는 마땅한 의견을 계하도록 하라.
세자 서연이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지속할 수 있는 것에도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므로 관계 관원이 지나친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강학 내용, 시행 일정 등을 살펴 진행하기 바란다.”
하였다. 호조 계목에 따라 24일 우부빈객 서민교에게 도성전도 한 벌, 좌익위 김시습에게 화승총 한 자루, 통례원인의 홍봉한에게 다기 한 벌을 각각 반사(頒賜)하였다.
수해에 대응하다.
○ 6월부터 전국에 이어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40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의 이재민, 작물과 가축 등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7월 25일 비변사에서는 각 지방감영으로 공문을 보내어, 임인년의 전례를 참고해 관할 구역의 수해 복구 사업을 시급히 기획 및 시행하도록 지시하고, 공주 공산성, 안동 하회마을 등 문화재 피해 내역을 조사해 두었다가 차후 토목 사업을 기획할 때 참고하도록 권고하였다.
○ 같은 날 계본을 올려 이와 같이 아뢰며 1) 수해로 무너진 창덕궁 인정전 뒤편 화계(花階) 담장을 보수할 것 2) 청주목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대한 치죄는 후일을 도모하고 위령비에 치제할 것 3) 故 채수근 상병이 순직에 대하여는 장려조 절차에 따라 접수되면 예조에서 논의할 것 등을 아뢰니, 29일 전교하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 계청한 내용에 따라서 차례대로 처리 및 논의토록 하되, 위령비 치제를 우선 시행하라.”
하였다. 예조참판 겸비변사제조 한명회가 전교를 받들어, 경상도 대구부에 있는 전국참사사상자위령비(傳國慘事死傷者慰靈碑)에 치제(致祭)하였는데, 이르기를,
“청주목 오송 지하차도에 수몰된 영령들이여, 이토록 갑작스레 명을 달리 하였으니 서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이에 예관을 보내어 넋을 위로하니, 부디 흠향하시라.”
하였다.
○ 한성부에서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중부 및 북삼도 지역 수해 복구 사업을 시행하니, 백성 7인이 참여하였다. 전라감영에서는 21일부터 27일까지 남부 지역 수해 복구 사업을 진행하였고, 백성 5인이 참여하였다. 공조에서 주관하여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창덕궁 인정전 보수 공역을 진행하니, 백성 14인이 참여하였다.
근속기장을 신설하다.
○ 8월 22일 백관이 탄일조하(誕日朝賀)를 올리니, 유사당상의 조하에 비답하기를,
“한가하게 자리에 앉아 거듭 이러한 하례를 받게 되니, 조종(朝宗)과 경외(京外)에 면목이 없다. 근속기장 추가 문제에 대해 불가 전교를 내린 적이 있으나, 이처럼 오래도록 근속하고 있는 신하들의 노고를 기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한두 개 기념장 신설에 대해 비변사에서 의견을 수렴해 보도록 하라. 또 창국 제25주년은 사반세기(四半世紀)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창국 기념장 역시 미리 정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에 9월 열린 제71차 주좌에서 논의하였는데, 조사된 대상자는 다음과 같았다.
5년 통훈대부 김지수통훈대부 정태수군기시정 이성필행한성부서윤 홍봉한승정원우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정예림 7년 첨지중추부사 겸세자익위사좌익위 김시습
10년 동지중추부사 겸세자시강원우부빈객 서민교예조참판 겸비변사제조 한명회호조참판 이운
5, 7, 10년 기장을 신설하거나, 두 개만 신설한다면 5, 10년 기장을 신설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유사당상이 다수의 관원이 5~7년 사이에 분포하는 만큼 5, 7년 기장 신설이 사기 진작 등 목적에 더 부합할 것 같다고 답하며 논의를 정리하였다. ○ 17일 유사당상이 이와 같이 아뢰니, 19일 하교하기를, “5주년, 10주년 등이 널리 기념하는 숫자에 해당하고 중론 역시 대체로 그러하다 하니, 두 기념장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조문 개정을 추진하라.”
하였다. 이에 23일 5년 근속 기장, 10년 근속 기장, 창국 제25주년 기장을 추가하여 기장수여사목을 개정하였다. ○ 갑진년 2월 12일자로 신설된 근속기장을 예조에서 조사한대로 일괄 수여하며, 10년 근속기장 수여자에게 물품 및 은사 500냥, 5년 근속기장 수여자에게 물품을 각각 추가로 지급하였다. 지방관 관할 구역 정례를 제정하다.
○ 10월 21일 병조에서 무관 인사에 대하여 아뢰니, 상께서 호조참판 이운을 경기감사에 명하며 하교하기를, “비변사에서는 지방관이 2원, 3원일 때의 관할 구역에 대한 정례를 마련해 보도록 하라. 일전에 정비된 내용이 있으면 준용할 수 있을 것이다. 관찰사 교서는 따로 의견이 없으면 초임 이후에는 생략하는 것을 규례로 삼는다.”
하였다. 이에 30일 비변사에서 과거 지방관 관할 조정 사례 9건을 살펴 규칙을 작성하고 논의하였다. ○ 11월 3일 비변사에서 지방관 관할 구역 정례를 마련해 아뢰기를,
1. 지방관의 관할 구역은 월경(越境)이 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지방관이 3원(員)일 경우 중부(한성부, 경기도, 강원도), 북부(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남부(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각각 관할한다. 3. 지방관이 3원(員) 이하일 경우 2항의 세 구역 중 한 곳에 2원(員) 이상이 임명되지 않도록 한다. 4. 지방관이 2원(員)일 때는 다음을 따른다. 1) 중부에 지방관이 없는 경우, 북부의 지방관이 한성부와 경기도를, 남부의 지방관이 강원도를 추가로 관할한다. 2) 북부에 지방관이 없는 경우, 중부의 지방관이 북부를 추가로 관할하되, 남부의 지방관이 한성부 및 경기도 또는 강원도의 행정을 이양받는다. 중부의 지방관 임지를 피하여 정해진다. 3) 남부에 지방관이 없는 경우, 중부의 지방관이 남부를 추가로 관할하되, 북부의 지방관이 한성부 및 경기도 또는 강원도의 행정을 이양받는다. 중부의 지방관 임지를 피하여 정해진다. 5. 각 지방관의 관력이나 각 지역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추가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비변사에서 정하여 어전에 제청(提請)한다.
하니, 6일 전교하기를, “지역 호구를 참작하면 지방관이 2원일 경우에 충청, 경상, 전라도와 강원도를 한 관원이 맡고 이외 지역을 다른 관원에게 감당케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계본 내용이 합리적이니, 외관직 관원 변동이 있을 때 이에 의거하여 비변사에서 관할 조정을 조처토록 하라.”
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