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만유(萬儒)의 스승이신 우리 조남명(曺南冥) 선생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대장부(大丈夫)의 이름은 마치 청천(靑天) · 백일(白日)과 같아서, 태사(太史)가 책에 기록해두고 사람들의 입에 새겨져야 하는 것이다." 하였다. 【遊頭流錄】 아아, 이 말씀을 두고 거듭 생각하니, 무릇 나라는 외적(外賊)의 침탈(侵奪)이나 언로(言路)가 막힘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요, 사필(史筆)을 잡는 이가 없고 역사(歷史)를 이야기하는 백성이 없을 때 비로소 망하는 것임을 알겠다.

다행히 본조에는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 선생이 쓴 창사(昌史) 7책 34권과 하곡기술(霞谷記述) 33권이 있어, 명회(明檜)와 같이 배움이 짧고 이력(履歷)이 일천(日淺)한 이도 역사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익히고 이야기할 바를 알게 되었다. 아조민들은 모두 조선(朝鮮)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모였는데, 이들이 동충서돌(東衝西突)한 일이 시간이 흘러 다시 과거가 되고 역사가 되니, 천리(天理)의 조화란 이처럼 신묘(神妙)한 것인가 탄식을 금치 못하겠다.

하곡기술은 병신년(丙申年:2016) 반야하교(半夜下敎)와 비변사 개청으로 끝이 나니, 이후의 역사는 비변사(備邊司:비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변사의 기록으로 말하자면, 내가 유사당상(有司堂上)을 지내며 지은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62권이 있어 여러 사건의 본말(本末)과 업무의 절차를 상세히 기술하고, 관원들이 법규와 전례를 상고(詳考)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성과가 있었다. 다만 내가 부임한 무술년(戊戌年:2018) 7월 이전의 기록이 없고, 여염(閭閻)의 백성들이 이야기삼아 읽기에는 마땅하지 않아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비국등록의 중요한 부분을 추리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절요(節要)를 짓는다. 비변사란 본래 스스로 청산(淸算)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관청이니, 아직 그 여정이 다하지 않았지만 조정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분투(奮鬪)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유익함이 더할 것이다. 형식에 있어서는 비국등록과 하곡기술의 것을 절충하여 취했다.

이 책은 개인이 저술한 사서(史書)이지 관청의 공식 기록은 아니다. 관직을 유지한 몸으로 사사로이 책을 짓는 것에 의혹(疑惑)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모도원(日暮途遠) 네 자로 답을 갈음하고자 한다. 나의 출처(出處)에 대해서는 후일에 변명할 바가 있을 것이다.



상(上) 12년, 개국625(2016)년 병신(丙申)

○ 좌목(座目)
* 이조참의 겸성균관사성비변사부제조 천어 (유사당상) 03.25 ~ 06.05
┖ 06.05 ~ 09.03 이조참의 겸통례원좌통례비변사부제조
┖ 09.03 ~ 12.29 이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 행세자시강원보덕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 03.25 ~ 06.01
┖ 06.01 ~ 06.05 비변사부제조
* 사복시정 겸비변사낭청 이운 03.25 ~ 09.10
┖ 09.10 ~ 09.12 병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비변사낭청 최성원 03.25 ~ 07.08
┖ 07.08 ~ 08.10 훈련원판관 겸승정원가주서비변사낭청
┖ 08.10 ~ 10.29 훈련원판관 겸비변사낭청
┖ 10.29 ~ 병조정랑 겸비변사낭청
* 행예빈시부정 겸비변사낭청 정예림 10.01 ~ 12.29
┖ 12.29 ~ 상서원정 겸비변사낭청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김시습 10.01 ~


비변사를 개청하다.

○ 2월 22일 금상께서 반야하교(半夜下敎)를 통해 연두교서를 폐기하고 전반기 정기 포상을 유예하였다. 이후 논의를 통해 3월 16일 비변사 개청이 결정되었다. 전조에 비변사 관원 인선을 명하고, 승정원에는 별명(別命)이 있을 때까지 모든 상소, 차자를 보관하도록 하였다. 【하곡기술 제33권】 25일 명하기를,

제188차 윤대를 마친다. 승정원에 하교하여 재개를 명할 때까지 윤대 시행을 보류한다.”

하였다.


비변사운영절목을 제정하다.

○ 3월 25일 이조참의 겸성균관사성비변사부제조 (유사당상) 천어가 부임 직후 운영절목 논의를 개시하였다. 이때, 개국613년 비변사 개청 당시 전교, 어전 하교사항, 조정 업무 일람표 등을 참고자료로 첨부하였다. 29일에 정리하기를,

“의견을 취합, 정리하여 다음과 같은 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존 안과 다른 것은 비변사에 일부 전결 및 후결 사항을 둔 것입니다. 관련 자료로 참고자료 표를 올렸으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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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품 이상관의 인사 및 외직 임명에 따른 계목
2) 삼사(三司)의 통상적인 사무
3) 기타 어명으로 특별히 지시한 사무
-. 다음 사무는 해당 관청에서 처결 후 비변사에 보고한다.
1) 정병 모집, 토관 임면, 군관 임면
2) 녹봉 지급, 호구 조사, 일반 민사 및 형사재판(경범 판결), 군사 번상 및 훈련, 도적 퇴치 등의 업무
-. 다음 사무는 비변사에서 후결 후 정기적으로 어전에 계하여 재가를 얻는다.
1) 개명
2) 소과 시행
3) 인재 천거
-. 다음 사무는 비변사에서 전결한다.
1) 5품관 이하의 인사
2) 전조 수장의 평정
3) 절목상 어전 보고의 휴가
-. 다음 사무는 비변사에서 정하여 어전에 제청(提請)한다.
1) 관리 또는 백성의 포상 : 훈포장 수여 및 추서, 승진과 승품, 근무일수 가산, 금전 등
2) 관리 또는 백성의 징계 : 파직, 면직, 근무일수 감산, 형옥, 벌금 등
3) 삼사 관원의 임면
4) 법령(法令) 제정 및 개정
5) 사면(赦免) 및 감형(減刑)
6) 관청 예산(금전) 지급 및 회수 : 행사용 포함
7) 참하관의 참상관 탁용(擢用)
8) 천거(薦擧) 및 소과 입격자 등용
9) 소과 미입격자에 대한 대과 직부 추천
10) 국방, 외교에 관한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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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부제조 서민교 이하 낭청들이 모두 동의하여, 4월 11일에 초안을 작성하였다.

○ 19일에 비변사 합계로 어전에 아뢰니, 전교하기를,

“개국613년 비변사 운영과 지금의 비변사 운영은 상황이나 목적에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5품 이하 관원에 대한 사령을 이조, 병조에서 자체로 하였는데, 개국618년 정월 14일에 봉교(奉敎) 두 글자의 뜻을 살리기 위해 전례를 개정하여 모든 사령에 먼저 재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인사는 모두 재가 후에 사령하라. 군관 임면, 인재 천거 등의 사무 역시 곧 인사이니, 역시 재가 이후에 발령한다. 개명(改名)은 시급한 일이 아니니, 이조에서 직계토록 하라. 삼사 관원 임면 또한 인사에 관한 것이므로 전조에서 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존처럼 이조, 병조에서 통청(通淸)하거나 현직 관원이 자신의 후임을 추천하는 것으로 시행한다. 과인이 10일 이상 정무를 살피지 않는 상황이 되면 당상, 당하, 참상, 참하 등의 모든 인사를 비변사에서 융통하여 시행하되, 정식 사령장인 고신(告身)으로 하지 않고 모두 비변사 또는 이조, 병조에서 발급하는 첩지(帖紙, 차첩)로써 임시 차정(差定)한다. 이외의 사항은 사언이 생길 때마다 정비하면 곧 관련된 체계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오늘 전교한 내용을 담아서 다시 절목을 마련해 보도록 하라. 후결(後決)은 사전에 없는 단어이니, 결재(決裁)로 고쳐 들이도록 하라. 과거 시행은 비변사 제청 항목으로 옮긴다.”

하였다. 이에 5월 9일 비변사에서 수정안을 마련해 올리니, 15일에 재가를 얻어 비변사운영절목이 제정되었다.


비변사 청사를 정비하다.

○ 공조와 협의하여 4월 10일부터 20일까지 11일간 청사 정비사업을 진행하였다. 백성 20인이 참여하였는데, 호조가 공석이므로 한성부에서는 비변사운영절목 안에 따라 수당 내역을 비변사로 통보하는 일이 있었다. 유사당상 천어가 이를 반려하며, 호조 부재시 이조에서 대행하고, 공문은 호조 청사로 접수하도록 안내하였다.


정기 포상과 낭청 이운의 가자(加資)

○ 5월 15일 금상께서 비변사운영절목을 재가하며 명하기를,

“유예하였던 전반기 포상에 관한 공론을 정해 계하도록 하라.”

하니, 6월 1일 비변사 합계로 교육과 지역 포상에 대한 의견을 내었는데, 연초에 예조와 호조에서 낸 의견과 같았다. 상께서 재가하시니, 상반기 포상이 시행되었다.

○ 7월 11일에는 각 관청으로 공문을 보내어 17일까지 하반기 정기 포상 대상자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20일부터 비변사 논의를 거쳐 27일 아뢰니 상께서 8월 16일자로 시행하도록 재가하였다. 이때 사복시정 겸비변사낭청 이운의 포상에 대하여 ‘가자를 논의할 때’라고 아뢰었는데, 8월 8일에 포상의 물목과 낭청 이운의 이력을 간략히 아뢰니, 상께서 시정을 제외한 비변사 관원의 중론을 계하도록 명하였다.

○ 8월 14일 유사당상 천어가 아뢰기를,

“삼가 생각건대 비록 불미스러웠던 일이 있었으나 시일이 흘렀고, 또한 그간의 공적과 이후의 행보를 볼 때에 마땅히 가자가 당할줄로 아옵니다.”

라고 하니, 임오년의 일을 말함이다.【하곡기술 제27권】25일 상께서 재가하시며 가자를 9월 1일자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유사당상 천어의 회방연(回榜宴)

○ 9월 25일에 보공장군 행호분위사직 손오공과 통정대부 이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천어의 회방연이 각각 열렸다. 유사당상 천어가 입시하여 사은하니, 전교하기를,

“참의는 과인이 즉위한 후에 급제하여 출사한 이래 처음 회방연을 맞이한 신하이므로 그 감회가 특별하다. 지금 부제조의 직함을 띄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전례에 따라 공로를 참작하여 한 자급을 올린다. 호조는 내구마 한 필을 특사하고 예조는 유보하였던 보국장을 수여하라.”

하였다. 근정이급 보국장 수여는 지난 하반기 포상으로 정해졌는데, 통례원좌통례로 예조 업무를 겸하고 있던 유사당상이 종묘제례 진행에 차질을 빚음에 따라 8월 10일에 수여가 보류되었던 것이다.


과거 준비 업무를 시작하다.

○ 10월 4일 행예빈시부정 겸비변사낭청 정예림과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김시습이 차자를 올려 별시 시행을 청하였다. 같은 날 행사헌부감찰 홍봉한도 차자를 올려 상소와 차자 재개, 과거 시행, 윤대 재개를 청하며 비변사에 대하여 덧붙이기를,

“비변사 운영을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관원이 적고 사무가 지체됨을 염려하여 비변사를 개청하였지만, 그간 비변사가 한 일은 매우 미미합니다. 비변사가 해결한 업무는 비변사 청사 준공, 운영 절목 제정, 그리고 평정과 포상, 지역의 행사 등의 업무입니다. 청사준공과 운영절목 제정을 뺀다면 그 외 업무는 능히 해당 부처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사무입니다. 더욱이 근래에는 그 업무가 애매합니다. 그렇다고 특정 업무들에 대한 전결권이 특별한 것도 없으니 비변사를 개청한 그 이유가 의문스럽습니다. 또한 현재 이조, 호조, 예조, 병조, 공조 모두 정상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정에서 예전부터 수차례 행정 간소화의 이야기가 나왔으나 비변사는 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께서는 두 차자 모두에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교하였다.

○ 7일에 행감찰 홍봉한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16일 전교하기를,

“잠시 잊고 있어서 느슨하게 적용하였지만, 상소나 차자에 대한 이전 하명이 상기되었기에 허락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의견이 있다면 비변사를 통해 정식 계본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하라.”

하였다. 이에 21일 낭청 정예림이 비변사 논의를 제기하였으나 유사당상 천어가 참여하지 않았다.

○ 24일 사헌부에서 비변사로 공문을 보내어 별시 시행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였는데, 공문을 접수하지 않자 11월 1일에 재차 공문을 보내어 독촉하였다. 3일 논의가 시작되어 19일에 비변사 합계로 아뢰기를,

“조정의 관원 충원은 항상 필요로 여겨지는 바입니다. 현재의 비변사 체제가 정상적인 체제라고 볼 수는 없고, 정상적인 체제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과거 사무의 정상화를 통한 인재의 정기적인 충원이 선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과거가 중단되어 과거에 응시하고자 하여도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니 과거 응시에 열망이 있는 백성들이 많을 것입니다. 과거는 제례와 더불어 아조의 근간을 이루는 고래의 제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중단되어 있으나 언젠가는 필히 정상화를 해야할 사무인데 마침 최근에 관원의 충원이 다소 이루어졌으므로 과거를 시행할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예조, 병조, 헌부 등에서 별시 시행에 대해 차자를 올린 것은 조정 정상화 교서 반포 10주년을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0주년을 기리며 증광시를 시행하고, 이후 중단된 과거 사무를 재개하여 101차 소과, 57차 대과를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30일 전교하기를,

“민국 학생들의 방학 기간인 내년 정월에 소과를 시행하는 방향으로 관련 대책을 마련해 보도록 하라.”

하였다.

○ 12월 12일부터 비변사 주도로 과거 준비 업무가 시작되었는데, 일정을 정하고 시관을 인선하는 한편 예조와 병조로부터 시제를 제출받아 31일 비변사에서 종합하여 아뢰었다. 이에 전교하기를,

“과거 시관과 시제는 예조, 병조에서 따로 계하게 하라. 따라서 소과 시행 일정에 대한 결정을 보류한다.”

하였다.


승의랑 김갑의 졸기(卒記)

○ 10월 13일 승의랑 김갑이 졸하였다. 김갑(金甲)은 전라도 김제인이며 본관은 김해, 호는 사람(思藍)이다. 개국621년 8월에 제42차 대과 문과 급제로 출사하여, 경기전참봉, 예빈시주부 등을 지냈다. 【政案】 9월 17일 사직하였는데, 한 달 후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가입한 모임은 없었으나 용화연가, 수누름가문 등과 교류가 있었다.

○ 10월 22일 예조에서 조문할 관원 파견에 대해 아뢰니, 전교하기를,

“재가한다. 앞으로 당하관 이하의 사망시 조문에 관한 사안은 비변사 전결로 시행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