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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기사본말
壬辰年 紀事本末
임진년(2012) 연두교서
- 임진년, 2012('621), 1번째 기사
2월 6일에 연두교서를 내렸다. 전교하기를,
“조정에서 그동안 추진한 여러 사업 가운데 아직 완결되지 못한 독립유공자 향사, 혜종 배향신 선정, 세제상정 문제 등에 대해서 진행 가능한 것부터 차례대로 재개하고자 한다. 일단 이달 중순의 윤대(輪對)에서 각 관원은 여러 사업에 대한 시행 우선순위,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라. 어전에서 거론된 증판서 이익(李瀷)의 증시나 실록청 개청 등의 사안도 있으니 참작해야 할 것이다.
인사 평정, 과거 시행 등의 주기적 업무 이외에 조정에서 시행하는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가 선행을 포상하고 악행을 처단하는 것이다. 근래에 좋은 일을 포상하여 송덕비, 칭송비, 정문 등을 세워주거나 범죄 행위를 심리하여 유배하고 하옥하는 등의 행정이 거의 없었으니,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관계된 중앙 관청에서도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지방 관아에서는 축성, 행사 등의 일반적인 사업에 치중하지 말고 이러한 일에도 관심을 둬 노력하기 바란다.
작년 연두교서에서도 지적하였으나 재작년보다 작년의 출사 인원이 더욱 적어 과거 급제와 천거, 토관을 가리지 않고 출사한 인원이 불과 다섯에 그쳤다. 누차 지적하여 천거 출사를 독려하였음에도 그러한 혜택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실로 등용할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담당 관원이 기대하는 천거 기준이나 자격이 너무 높기 때문인가. 이조, 예조, 병조, 각급 감영 등에서는 작은 능력이라도 보인 백성이 있으면 발탁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라. 이 문제는 연례적으로 교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므로 반드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임진년 연두교서에서 거론하였던 독립유공자 향사, 혜종 배향신 선정, 세제상정 문제 등의 사업들은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고 무기한 보류되었다.】
통정대부 박연이 졸(卒)하다.
- 임진년, 2012('621), 2번째 기사
통정대부 박연은 경인년(2010) 10월에 파직된 이후 이듬해인 임진년 2월에 전옥서제거로 복직하였다. 2월 중순 윤대에서 박연이 아뢰기를,
“연두교서에서 밝히셨듯이 산적한 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신은 우선 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판교 천어와 신은 세제도감의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우선 이 일을 씻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판교와 신이 우선 마무리하여 차근차근 누적된 일들을 해결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하고 이조정랑 한명회, 군자감주부 박윤상, 공조정랑 황석 등이 모두 세제상정을 우선 처리해야 할 사업이라고 아뢰니 답하기를,
“조정 사업에 관한 건은 다음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한다. 세제상정을 우선 진행하는 것으로 공론이 수렴하고 있지만, 지금 주무 관청이 호조가 녹봉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고, 그 직임을 자임하는 관원은 본직에 소홀하니 도감의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였다. 전옥서제거 박연이 다시 아뢰기를,
“연두교서에서 밝히신 사업인데 교서를 반포하신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미루심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찌 조정에서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한다는 말입니까. 주무 관청이 호조라고는 하나 굳이 호조의 관원이 중심이 될 필요는 없을뿐더러, 호조의 관원이 그러하다면 체직시키고 주무를 담당한 관원을 호조로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단지 호조의 상태가 그러하니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일을 차일피일 미루기 위한 단서일 뿐입니다. 차라리 형조의 당면 업무가 급하지 않고 업무가 과중하지도 않으니 신을 겸호조로 삼아 일을 추진하게 하십시오.”
하니 답하기를,
“주무 관청을 중히 여기는 것은 관청마다 주어진 소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하여 공조에서 과거를 치르게 하고 예조에서 출병을 주관하게 하겠는가. 제거 박연이 도감의 일을 자신하지만, 작년에 도감 도청에 임명되어 한 달 동안 이룬 것이 무엇이며, 지금 형조에 부임하여 10일이 지나도록 진행한 업무가 무엇인가. 도감 직임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하교한 바가 있으니, 본직에 충실한 후에나 겸직 또는 도감의 직임을 맡길 일이다.”
하였다. 이에 전옥서제거 박연이 또 아뢰기를,
“세제의 일을 어찌 호조에서 감당하지 않고 도감을 만들어 운영하겠습니까. 이는 호조의 일을 넘어서는 것이며 아조의 체제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전하께서는 계속 호조가 주무 관청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신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다시 조정에 나온 것은 지난날 신의 잘못을 씻기 위해서이며 그만큼 아조에 보탬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잘못이 있다 하여 어찌 감당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누가 다시 즐겨 조정에 나오겠습니까. 한 번 잘못하면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신이 본직에 충실히 하고자 하여도 도대체 형조의 당면 업무가 무엇입니까. 일부러 형정을 일으켜서도 안 될뿐더러, 결국 민국의 일을 받아 뒤처리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형조의 정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두교서에서 말씀하신 굵직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신은 형조를 정상화하고자 전례도 없는 당상 무록관을 무릅쓰고 조정에 등청한 것이 아닙니다. 신의 충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하니 답하기를,
“징계 전력자를 무록관에 임명하는 제도를 시행한 후에 당상관으로 처음 그 규정에 따라 관직에 임명된 것인데 전례를 말하는가. 호조 수장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상정도감의 수장 직임을 수행케 한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가 재정에 관한 사업을 주관하는 것에서 호조 관원을 제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조에 소속 관원이 없으면 수사는 형조에서 하더라도 재판관은 지방관이 맡을 수 있고, 지방 관청의 수사나 재판을 조정하는 것들도 역시 형조의 소관이다. 나라에 범죄가 없고 처벌이 없는 태평성대를 누가 지향하지 않겠는가마는, 그것이 어찌 업무를 하는 않는 명분이 되겠는가. 여러 사업을 완수하는 것을 연두교서에서 말하였지만 형정에 관한 것도 역시 교서에서 분명하게 명시한 것이다.”
하였다. 전옥서제거 박연이 다시 헌의(獻議)하기를,
“신이 말하고자 하는 전교는 조종조의 전례입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당상관은 무록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상 무록은 지금 창시된 것일 뿐입니다. 신이 형조의 업무를 하지 않는 명분을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굳이 일을 벌일 이유가 없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일이 있으면 마땅히 열심히 해야 하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방관의 일이 얼마나 많은데 또 지방관의 업무를 보태려 하십니까.”
하니 답하기를,
“무록관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한 지 1년 이상 지났는데, 본인이 그 규정을 적용받는 당사자가 되었다고 지금에서야 조종조의 전례를 말하는가. 또 예전 조정의 일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당상관으로 관품이 크게 못 미치는 군직이나 체아직 등에 임명된 사례를 허다하게 찾을 수 있는데, 당상관은 허물이 있든 없든 반드시 당직이나 실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문도공 정약용(丁若鏞)이 찰방으로 좌천된 것도 동부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이후의 일이다. 제거가 무록직에 명해진 것은 직전에 징계 경력 때문이니, 당상 무록은 결과이고 파직이 원인이다. 파직에 즈음하여 청죄소를 올릴 당시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제거를 형조에 명한 것은, 크게는 연두교서에서 천명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이고 작게는 당상의 지위에 이른 제거에게 형조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형조가 개폐를 반복한 원인에 형조 업무에 대한 주저나 거부가 포함되기를 바라는가. 관원들이 하고 싶은 관직이나 직무만 하려 한다면 장차 조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또 그것이 당상관으로 모범을 보일 일이며, 어느 자리가 되었든 묵묵히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관원들에게 장려할 일이겠는가. 이처럼 하교한 후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과인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였다.
3월 21일에 전옥서제거 박연이 아뢰기를,
“현재 고발이 두 건 들어왔으나 이미 한 달이 지난 상황인데도 재판 구성조차 못하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 상황인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재판의 주무는 형조가 아닌 지방관이 하급심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하급심에서 형조의 일은 재판정을 배정하는 일 이외에는 달리 하는 일이 없으니, 형조는 다른 관청에서 겸직으로 하게 하고, 신을 더 긴요하게 필요한 관청으로 차정하여 목민하게 하소서. 신이 형조의 직무를 아직 겪지 못했다고 하여 배려하심을 신이 모르는 바 아니나 더 중요한 것은 신의 관력보다 조정을 조정답게 운영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고발을 접수하여 사건을 수사한 관청의 관원이 검사를 맡았으면 재판관은 이웃 관청이나 형조에서 담당하는 것이 현행 제도이다. 사건을 수사하여 기소하기로 한 관원이 재판관을 맡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인데, 이처럼 절목과 지침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재판부 구성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관 임기 문제로 인해 이웃 감영에서 재판관을 맡기 어려운 상황이면 절목에 따라 형조에서 재판을 주관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형조 이외의 관직에 뜻을 두고 주청하기 이전에, 적극적 나서서 소임을 완수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22일에 전옥서제거 박연이 스스로 파직을 청하며 아뢴 대략에,
“신이 일신을 위하여 조정에 나아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누차 아뢴 바와 같이 신은 단지 조정을 위하여 일할 뿐입니다. 겨우 형조를 거치지 않는다고 하여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긴요한 관청이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재판은 하급심이 우선인데 하급심 재판은 지방관의 고유 권한임에도 형조를 운운하시면서 복조 이후 처음으로 전국 팔도가 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파국을 정령 상께서는 모르신단 말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지방 관청의 행정력을 감안하여 형조 판단에 따라 하급심을 거치지 않고 상급심을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이 절목에 있고, 재판관 선임 시 형조 관원을 차선으로 명시한 것 또한 절목이다. 최선이 여의치 못하면 차선이 당연한 것 아닌가. 굳이 재판을 주관하는 일 자체가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올라오는 공문만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대처할 뿐, 어찌 적극적으로 조율하거나 스스로 사건을 인지하여 수사하는 모습조차 없었는가. 지금 형조의 상황이 바로 무사안일의 전형이다.
차자에 이러저러한 말을 담았으나 형조에 부임하여 한 달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보인 모습과 언행은 결국 형조는 맡기 싫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윤대에서도 인지 수사에 대해 지적하고 형조 업무 방치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형정 업무의 중요성에 관해 천명하고 당상관에 대한 기대에 관하여 하교한 바가 있다. 당상관이라면 스스로 모범을 보여 어느 관직에 임명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인데 행적이 하나로 귀결되니 실로 개탄할 일이다. 이것이 당상관다운 행동인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파직은 형조를 벗어나고자 하는 청을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삭직하라.”
하였다.
며칠 뒤인 26일에 박연은 아현문중의 사저에서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가 생전에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사업이 실록 찬술이었으나 매번 임금이 허락지 않아 소망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정해년(2007)년 12부터 임진년에 졸하기까지 수차례 실록청 복설과 실록 찬술 재개를 주청하였으나 임금은 매번 실록 찬수를 감당할 만한 관원을 찾기 힘들다거나 추진 중인 다른 사업의 완결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박연이 문중에 남긴 마지막 유언에서도 실록 만드는 일을 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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